[박정자의 생각돋보기]성완종 정국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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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성완종 씨 모습. 동아일보DB
생전의 성완종 씨 모습. 동아일보DB
정치에 큰 관심 없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느 날 저녁 TV 화면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을 것이다. 한 기업인이 울먹이며 자기는 MB맨이 아니라느니, 박근혜 정부를 세운 데 공이 있다느니, 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의 문제를 마구 논할 수 있는, 그렇게 중요하고 비중 있는 사람을 왜 나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지, 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첫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살했고,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현 정부 실세들의 리스트는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박근혜 정부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박근혜 정부를 지지했던 우파들의 좌절감과 실망감은 컸다. 젊은이들로부터 ‘꼰대’니 ‘극우 반동’이니 하는 소리는 기본이고, 여차하면 ‘토 나온다’라는 욕설까지 들어가며 보수적 가치를 지키려 했던 아스팔트 우파들의 순진무구한 방패막 뒤에서 그들은 시궁창 같은 돈과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사로이 교환하고 있었다. 차라리 우파적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인의 뇌물이었다면, 비록 불법이라 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록새록 알려지는 성완종(유명인이므로 존칭은 쓰지 않겠다)의 면모는 한없이 불쾌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는 자기 기업이 마치 사금고(私金庫)인 양 돈을 개인적으로 마구 가져다 씀으로써 회사를 부실화했고, 결과적으로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했다. 2011년부터 4년 동안(MB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겹치는 기간이다) 경남기업 계열사 3곳으로부터 횡령한 돈이 182억 원이다. 이 중 상당액이 정치 자금 혹은 로비 자금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2012년 4월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진출했다가 2014년에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신문 기사에 언뜻언뜻 비치는 추징금 감면이니, 담보 없는 대출이니, 감자(減資) 없는 워크아웃이니 하는, 우리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단어들로 미루어보건대 로비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금융 감독 기관, 국세청, 은행 등 한국의 경제권 전체에도 미쳤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성완종이 받은 두 번의 사면(赦免)은 우리를 더욱더 허탈하게 한다. 그는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특별사면을 받았는데, 두 번째 것은 두 정부의 권력교체가 이루어진 바로 그 시점이다. 여기서 이상득 노건평 등 두 형님의 이름과, 원세훈 양윤재 등 MB맨들의 이름이 현란하게 오르내린다. 누구와 누구를 맞바꾸는 추악한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자기들도 그것이 부끄러웠는지 언론에 발표된 최종 특별사면 명단에는 성완종의 이름이 빠져 있다. 빠져 있는 이름은 또 하나 있다. 통합진보당 의원이었던 이석기다. 이석기와 성완종이 나란히 동등한 자격으로 검은 장막 뒤에 숨어 있다니! 그들이 좋아하는 마오이즘의 용어를 빌려 말해보자면, 이것이 그들 식의 ‘홍(紅)과 전(專)’이란 말인가? 아니면 동음이의어로 ‘홍(紅)과 전(錢)’?

이쯤에서 우리는 마구 혼란을 느낀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단순히 정당의 대립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의 정부이다. 그런데 장막 뒤에서 그들은 서로 거래하고 흥정을 했다. 경찰과 도둑이 알고 보니 서로 내통하고 있더라는 블랙 코미디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인가? 국민의 마음속에 드리운 이 깊은 정치 불신과 냉소주의는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정치인들만이 태평하게 아전인수(我田引水)하고 있는 것 같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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