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정두언-박영준 싸움과 닮은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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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이 갓 넘은 2008년 6월의 일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두언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 주변의 국정 농단을 고발하는 폭탄 발언을 했다. “청와대의 A 수석과 B, C 비서관, 그리고 한나라당 D 국회의원이 국정 난맥의 진원이며 특히 B 비서관은 노태우 정부의 박철언,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 노무현 정부의 안희정 이광재 씨를 합쳐 놓은 것과 같은 힘을 갖고 있다. 인사 전횡이 얼마나 심했는지 어느 부처는 총무과장 인사에까지 간여했고, 어느 장관은 분하고 억울하다며 자필 기도문까지 보여주더라”고 정두언은 말했다. 그는 B 비서관이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이라고 밝히곤 “비서관 한 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두언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대선 때와 당선인 시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핵심 측근이다. 정권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만한 사람이 이런 발언을 했으니 사실 여부를 떠나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광우병 촛불시위까지 겹친 터라 이 대통령은 정국 무마를 위해 참모진을 교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의 수족이자, 형인 이상득 의원의 분신과도 같았던 박영준은 입성 3개월여 만에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오래전의 사건을 길게 반추한 것은 ‘정윤회 동향’ 문건으로 촉발된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마무리할지 궁금해서다. 두 사건은 묘하게 닮았다. 지금의 사건은 ‘문고리 3인방’으로 일컬어지는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과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간의 알력이 기본 구도다.

두 사건 다 정권 내부 인사들끼리의 ‘총질’이고, 인사 문제가 화근의 씨앗이다. 대통령의 형, 동생, 비선 실세로 의심받는 사람들이 배후 인물로 등장한다. 과장 인사 개입이니, 어느 장관이 뭐라고 했는지까지 닮았다. 정두언이 “권력투쟁이 아니라 인사 전횡을 경고한 것”, 조응천이 “워치도그(감시견)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한 말투도 비슷하다.

다만 2008년 사건의 경우 문건(그것도 청와대의 공식문서) 작성과 유출로 파생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말대포로 촉발돼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파장도 지금만큼 크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이 대통령의 뒤처리는 물렁했다. 박영준은 얼마 안 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복귀했고, 지식경제부 2차관을 맡아 자원외교에까지 나섰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신조어를 낳았던 이상득 의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들에 의한 국정농단과 인사 개입 구설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2년 뒤 정두언이 자신과 동료 의원들에 대한 이상득 박영준 측의 정치사찰 의혹을 제기해 양측은 다시 격돌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힘을 합쳐도 모자랄 공신과 측근들이 사사건건 충돌하니 국민의 불신은 커지고 국정의 동력은 약해졌다. 싸움에 연루됐던 인사들은 모두 뒤끝이 좋지 못했다. 이들 외에 대통령의 친구, 멘토를 비롯해 숱한 측근과 친인척들이 이런저런 비리에 연루돼 감옥에 갔다. 대통령도 결국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초장부터 이 대통령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측근과 친인척 관리에 단호함을 보였다면 이 지경까지 갔을까.

정윤회 문건 관련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결과도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과 참모들에겐 명예회복 차원에서 결과가 중요할지 몰라도 국민의 뇌리 속엔 이미 고장 난 청와대와 불투명한 국정 운영의 잔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잔상을 최대한 빠르고 말끔하게 지워나가는 것이 지금부터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정두언#박영준#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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