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인]표절, 우리 사회 윤리관 무너뜨리는 도둑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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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고위공직자 인사 때마다 예외 없이 불거지는 쟁점 중의 하나가 ‘표절’이다. 각 분야 최고 수장으로 거론되는 분들의 논문 표절과 대필 의혹은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타인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마치 자기의 창작물인 양 몰래 사용하는 표절 행위는 저작권 침해와 같은 불법행위이기 이전에 자신의 양심을 버리고 사회적 윤리를 경시하는 행위이다. 처벌의 대상 여부에 관계없이 도덕적으로도 지탄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학창 시절 외국 책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짜깁기한 수준의 교과서들이 많았다. 출처나 인용 표시가 없는 경우도 흔했다. 학술지 발표 논문에 지도교수의 이름을 함께 올리는 것도 당시에는 관행이었다. 그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제1저자로 올리는 몰염치한 교수도 있었다.

당시의 사회적 여건을 어느 정도 감안할 수는 있어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헌정곡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작곡하여 유명해진 일본의 국민작곡가 겐고 쇼이치의 사기극도 처음에는 타인의 곡을 사고파는 관행적 행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창작과 표절, 모방의 경계선이 분명하진 않지만, 정도를 벗어난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창작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윤리관을 무너뜨린다. 필자 역시 수년간의 고된 번역 작업으로 빛을 본 주해역서의 출판권을 본의 아니게 강탈당한 경험이 있다. 필자가 번역하여 이미 수년 전에 출간된 책을 필자와 출판사의 동의 없이 다른 교수가 번역하여 타 출판사 이름으로 다시 낸 것이다.

사실 그동안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많았지만 적용할 기준이나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분명한 판단은 쉽지 않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에서 ‘연구윤리지침’을 개정하여 논문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 등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표절에 따른 저작권 침해 문제는 사람들의 창작열을 저하시키는 등 우리 사회가 부담하는 비용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저작권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양심과 윤리관의 정립이 우선돼야 하겠다.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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