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300> 처서(處暑)라는 말의 내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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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라는 말의 내부
―천서봉(1971∼)


골 진 알밤, 무딘 칼날 세워 보늬 긁는다. 겨의 주름 깊이 길이 나 있다. 더위가 물러가는 길, 길을 따라 또 길이 돌아오는 길.

죽은 할미도 달의 오래된 우물도 모두 내 안구 속으로 돌아와 박힌다. 깊어가는 수심의 습지에서 남보다 더 오래 우는 개구리의 턱이 깊다.

지나간 애인들의 뒤통수가 전봇대마다 건들건들 매달려 있다. 울음소리를 참아온 나무들이 투명한 손바닥을 여름의 뒷등에 비빈다.

앵앵거리는 추억은 다만 비틀어져갈 뿐, 하나도 안 아프다. 그런 모기의 주둥이처럼 저녁이 오고, 한두 겹의 내력을 더 견디며 나는, 고요의 중심으로 천천히 내려가리라.

더위가 물러가는 길, 파르라니 깎은 몇 개의 알밤을 바가지에 담그면 달의 손바닥들이 내 오래된 뇌(腦)를 쓰다듬는다. 서늘한 나의 카르마.

생밤 깎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겉껍질을 간신히 벗겨내면 감촉은 보드라우나 질긴 속껍질, 보늬가 과육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몇 개 깎지 못한다. 오죽하면 밤 깎는 가위가 발명됐을까. 언젠가 노점상이 그 가위로 마술 부리듯 쉽게 밤 깎는 시범을 보이는 데 홀딱 반해 한 개 샀다. 그런데 내가 워낙 손이 무디어선지 낑낑거리기만 하다가, 굶주리던 차에 기껏 거북이를 만난 표범처럼 안타깝게 밤 바구니를 들여다보고는 함께 저만치 밀어버렸다.

화자는 밤을 깎고 있다. 보늬를 날름 깎아내지 않고 ‘무딘 칼날 세워’ 긁는다. 할머니 제상에 올릴 밤일까, 추석 차례에 쓸 밤일까. 정갈한 자세로 진득하니 밤 깎기에 몰두하는 한편으로 지나온 일들이 화자의 머릿속에 오간다. ‘깊어가는 수심의 습지’며 ‘울음소리를 참아온 나무들’이며, 화자의 지난여름은 그리도 서러웠나 보다. 그러나 화자의 생도 이제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에 이르고 보니, ‘앵앵거리는 추억은 다만 비틀어져갈 뿐, 하나도 안 아프’단다. 밤 껍질은 둥글게, 둥글게 깎이고, ‘한두 겹의 내력을 더 견디며 나는, 고요의 중심으로 천천히 내려가리’란다. 지난일은 되돌릴 수 없다. 한 대로 받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카르마, 곧 업(業)을 받아들이면 마음은 고요해지리라. 다시 가을, 그 길목에 들어서며 되살아나는 아리고 쓰린 마음을 투명하고 서늘한 시어로 다스리는 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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