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청와대는 ‘여의도 대통령’이 두려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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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카드가 무산되고 정치인 총리설이 무성하던 6월 초.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인사는 정설처럼 굳어져 가던 김문수 총리 카드에 대해 “찾다 찾다 사람이 없으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는 기류”라고 잘라 말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강하게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붙였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 대한 청와대의 거부감이 묻어났다.

청와대가 보다 진지하게 검토했던 김무성 총리 카드는 7·14 전당대회에 나선 김 의원의 기류를 파악하고 여지를 자르면서 무산됐다.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대선주자로서 위상 부각을 위해 청와대와 각을 세울 것을 우려해 검토한 카드였다. 청와대는 스타일만 구기고 김 의원은 결국 대표가 됐다. 자신과 껄끄러웠거나 반기를 든 적이 있는 정치인에 대한 박 대통령의 경계심은 그렇다 쳐도 대다수 정치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생각은 ‘불가근 불가원’에 가까워 보인다. 대통령이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을 불러 정책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 자체가 국정동력의 확대인데 그런 자리가 없어 안타깝다는 의문들이 많다. 박 대통령은 국가대혁신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도 6·4지방선거 전 제1야당 대표가 제안했던 회동조차 선뜻 활용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여름휴가도 사실상 반납하고 청와대에 눌러앉아 국정을 고민했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 실체를 드러낸 대한민국의 적폐(積弊)는 대통령 혼자서는 타파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시한 것만도 4번이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는 지시도 수없이 했던 얘기다. 유 씨의 시신 발견으로 드러난 현실은 바닥 수준의 검경 공조와 죽은 유병언을 쫓아 40일 넘게 헤맨 한심한 수사력이었다. 대통령의 영(令)조차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관료사회의 절벽 앞에서 누구보다 박 대통령 자신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년 반 전 취임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들도 그랬듯 세상을 다 바꿀 수 있을 듯한 기대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8년의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 새 주인이 될 아이젠하워에게 남겼다는 어록이 인상적이다. ‘이 친구가 곧 이 자리에 앉겠지, 그러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겠지. 하지만 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걸. 불쌍한 아이크.’

국회선진화법이라는 덫을 무기 삼는 야당과 비박(비박근혜)계가 득세한 여당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하면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혁신범국민위원회를 100개 만들어 본들 실행력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군사의 천재 한니발과 강대국 카르타고를 상대로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원로원이 한 덩어리가 되어 지휘계통을 담당했을 때이다.

여의도에 입성한 국회의원들치고 여차하면 청와대의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지 않은 이가 드물다. 그들과 몇 명씩이라도 만나 식사를 함께하고 의견을 청취하며 대통령의 소망과 고충도 나누다 보면 막힌 곳도 뚫고 협력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관료들의 서면보고에만 파묻힐 게 아니라 시중 욕설까지 현장에서 듣고 다니는 국회의원들과의 대화가 국가대혁신의 피를 돌게 할 수 있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도 통일 준비도 법적 제도적 관문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작심하고 가로막으면 돌파할 방법이 없다. ‘여의도 파트너’들은 싫든 좋든 박 대통령이 부딪쳐서 타고 넘어야 할 외나무다리와 같다.

그제 7·30 재·보선에서 15명의 ‘여의도 대통령’이 추가로 탄생했다. 박 대통령은 ‘여의도 대통령’들에게 먼저 벽을 치우고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하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총리#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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