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죽은 유병언’ 찾아 헤맨 검경, 세월호 배후 밝힐 수 있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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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된 사실이 그제 뒤늦게 밝혀졌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 씨는 세월호 참사 나흘 뒤인 4월 20일 출국금지가 내려진 때부터 도피생활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5월 25일 전남 순천에서다. 그 후 감감무소식이어서 망명설 등 추측이 분분했으나 6월 12일 순천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 씨였음이 40일 만에 확인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로 유 씨를 지목하고 모든 수사의 초점을 맞췄던 검찰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유 씨 생포 실패는 세월호 침몰 직후 해경의 구조 실패에 이은 또 한 번의 공권력 실패다. 초동 수사 부실부터 검경 공조 미비까지, 세월호 사고 대처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이 판박이처럼 되풀이됐다. 유 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불과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시신에서 금니 10개가 나왔고 주변에는 계열사인 한국제약에서 만든 스쿠알렌 빈병이 있었는데도 경찰은 주목하지 않았다. 검찰 역시 별 의심 없이 통상적 변사 사건으로 처리했다니 한심하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해경의 판단 잘못으로 승객들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무능한 검경 때문에 시신이 발견된 이후에도 하루 평균 3만 명의 경찰력이 유 씨 수색에 나섰고 밀항을 막기 위해 군 병력까지 대대적으로 동원됐다. 국민은 반상회까지 열어 협조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유 씨를 놓고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네 차례 지시가 무색하게 느껴질 뿐이다. 변사자 신원 확인에 안이했던 순천경찰서장이 직위 해제되고 순천지청 검사는 감찰을 받고 있지만 이 정도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검경 지휘부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여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제라도 검경은 유 씨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해 불필요한 의혹의 확산을 차단해야 할 것이다. 시신의 유전자(DNA)와 지문 감식 결과가 나왔음에도 유 씨일 리가 없다며 ‘음모론’에 솔깃해하는 반응도 나온다. 유류품 중에는 도피에 꼭 필요한 돈과 휴대전화가 없었다. 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어 옮겨졌을 가능성까지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해야 한다.

유 씨는 그가 실소유주인 모든 계열사의 횡령, 배임, 탈세, 해외 재산 도피, 부동산실명거래법 위반, 계열사 불법 지원, 뇌물 공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의 중심에 서 있었다. 검찰은 핵심 피의자가 사망함으로써 현재 기소된 유 씨의 가족과 측근들의 혐의를 유 씨 없이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장남 대균 씨의 체포와 차남 혁기 씨, 장녀 섬나 씨의 국내 송환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구조에 정부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비용으로 지불했다. 구상권(求償權) 행사를 위한 유 씨 일가의 재산 환수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유 씨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의 각종 의혹과 불법은 비호 세력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문제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유 씨가 세모그룹 부도 이후 오랜 세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같은 거대한 ‘지하왕국’을 구축한 것을 보면 정관계 배후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유 씨가 살아서 체포됐다면 그를 도왔던 정관계 비호세력은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유족의 마음은 찢어지는데 어디에선가 유 씨의 사망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유 씨의 죽음이 진실을 미궁 속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유 씨 왕국의 조력자들을 규명하라.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복침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유병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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