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 눈물 속에 떠난 한국계 피겨영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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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피습 카자흐 데니스 텐 장례식
구한말 의병장 민긍호선생 후손… 평창 올림픽서도 “제2조국” 애정
시민들 “못 지켜줘 미안” 배웅… 현지경찰 용의자 2명 체포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발루안 숄라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카자흐스탄의 피겨스케이팅 영웅 데니스 텐의 장례식에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 애도했다. 데니스 텐의 현역 시절 모습을 담은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다큐사진가 박종우 씨 제공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발루안 숄라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카자흐스탄의 피겨스케이팅 영웅 데니스 텐의 장례식에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 애도했다. 데니스 텐의 현역 시절 모습을 담은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다큐사진가 박종우 씨 제공

‘당신을 지키지 못한 우리를 용서하세요.’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괴한의 피습으로 생을 마감한 카자흐스탄의 피겨스케이팅 영웅 데니스 텐. 텐의 장례식이 열린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발루안 숄라크 스포츠센터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 스포츠센터는 텐이 생전에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며 훈련에 매진한 곳이다.

카진포름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텐의 장례식은 알마티 시민장으로 거행됐다. 장례식장에 텐이 사망 직전에 쓴 노래 ‘그녀는 내 사람이 될 수 없어’가 울려 퍼지자 텐의 사진과 꽃을 들고 있던 조문객들은 굵은 눈물을 흘렸다. 수천 명의 시민이 장례식에 참석한 가운데 알마티 시내의 꽃집에 꽃이 모두 판매된 탓에 장례식에 가져갈 꽃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조문객들도 있었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남자 싱글 동메달리스트인 텐은 19일 알마티에서 자신의 렉서스 차량 백미러를 훔치려던 괴한 2명과 다투다가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텐은 3L가 넘는 피를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의병장의 후손’으로 불리는 텐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선수였다. 그는 구한말 의병장 민긍호 선생의 외고손자다. 그의 할머니가 민 선생의 외손녀이다. 과거 한국에서 열린 피겨 대회에 참가한 그는 자신의 안내 멘트에 민 선생의 이야기를 넣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올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제2의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해 뜻깊다”고 말했다. 텐의 소속사는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다.

텐의 장례식에는 고려인 어머니와 러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무패 복서 겐나디 골롭킨 등 많은 카자흐스탄 스포츠스타들이 참석했다. 골롭킨은 “텐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스흐탄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데니스 텐의 비극적 죽음에 그의 가족과 동료들에게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한다. 텐에 대한 밝은 기억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장례식 후 텐은 알마티 인근 ‘우정의 마을’이라는 공동묘지로 옮겨져 안장됐다.

한편 카자흐스탄 알마티 내무국은 텐을 살해한 혐의로 수배 중이던 용의자 2명을 모두 체포했다고 밝혔다. 러시아투데이(RT)에 따르면 이들이 훔치려 한 백미러의 가격은 86달러(약 9만7000원)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카자흐스탄#데니스 텐#피겨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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