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仁義의 건축과 도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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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인(仁)은 사람의 편안한 거처요, 의(義)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맹자’

좋은 집과 좋은 길은 무엇일까? 강단에서 건축과 도시를 가르쳐야 하는 필자는 늘 이 질문을 던진다. 집(건축)과 길(도시)은 상관관계가 있다. 집이 좋아지면 길이 좋아지고, 길이 좋아지면 집이 좋아진다. 좋은 집에는 사람이 모이고, 좋은 길에는 사람이 흐른다.

신용산역에 있는 한 화장품 회사가 새 사옥을 지으며 임대수익이 가장 높다고 하는 지하 1층∼지상 3층 공간을 시민에게 모두 내주었다. 입소문을 듣고 타 대학 건축학과 교수 2명과 답사를 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B1 식당가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3층 높이의 노출 콘크리트 로비가 나왔다. 중앙에 두께가 3m가 넘는 바둑판 모양의 콘크리트 천장에서 빛이 떨어졌다. 흔들리는 빛이 1층 백색 화강석 로비 바닥 위로 떨어져 단단한 돌 표면이 수면처럼 일렁였다. 천상의 것이 잠시 지상에 내려와 순간 보이고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대문을 열고 나가 보니 건물 4면이 처마 공간이었다. 마침 비가 와서 시민들이 비를 피해 처마 아래에 모였다. 시민들은 재잘재잘 떠들며 웃었다. 우천의 옅은 빛이 백색 루버에 닿자 곱게 반사하며 부드럽게 퍼졌다.

인(仁)으로 세운 집은 편안하고(安宅), 의(義)로 세운 길은 바르다(正路). 인의(仁義)를 문자적으로 분석해 보면, 인은 사람 인(人) 옆에 두 이(二)가 있고, 의는 나(我) 위에 양(羊)이 있다. 혼자가 아닌 다수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양을 하늘에 올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이 건물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장삿속 건물이 판을 치고 있는 회색 도시에 인의의 백색 건축을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과 기관이 어떤 집과 어떤 길을 세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의의 집과 길을 세우자. 그 집은 편안하고, 그 길은 바르다.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맹자#인의#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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