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돌아서는 트럼프 붙잡은 김정은, 대화 원하면 변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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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에 놀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태도를 바꿔 대화를 갈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은은 어제 오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입을 빌린 담화에서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회담 취소 6시간 만에 나온 김정은의 담화에는 불과 하루 전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며 ‘핵 대 핵의 대결장’을 외치던 호기는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도 어젯밤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핵심 의제인 비핵화 방식에 대해선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없었다. 미국의 ‘속전속결 일괄 이행’ 요구에 여전히 ‘단계별 해결’을 내세웠다. 담화는 “만나서 한 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라며 비핵화 이행은 물론 이를 위한 합의도 단계별로 하자는 태도를 내비쳤다. 동결부터 검증, 폐기까지 단계마다 합의 후 이행하는 과거 방식을 답습하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이 황급히 낮은 자세로 전환한 것은 어떻게든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다급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외부 공세엔 늘 더 거친 반격으로 맞서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라면 김정은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정중한 비공개 서한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정상회담 ‘재고려’를 위협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대미 나팔수 뒤에 숨었다.

무엇보다 비핵화 방식도 기존 단계적 해법을 고수했다. 이래선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씻을 수 없다. 북한은 전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면서도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과정’이라고 규정해 핵보유국 지위임을 은연중 드러내 자발적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이런 태도라면 북한은 실책을 만회할 수 없고 한반도는 다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와 최대의 압박 작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북-미 간 대화 복원이냐, 극한 대결이냐는 김정은의 결단과 행동에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일이 잘 풀려 지금 예정된 정상회담이 열리거나 나중에 어떤 시점에 열릴 수도 있다”며 회담의 완전 무산이 아닌 연기, 나아가 ‘6·12 싱가포르 회담’의 부활 가능성도 열어뒀다. 대화는 언제든 되살릴 수 있다. 그 전제는 김정은의 진정한 변화다.
#북미 정상회담#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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