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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의 칸&피플] 이창동 감독이 밝힌 ‘버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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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의 칸&피플] 이창동 감독이 밝힌 ‘버닝’ 해설

이해리 기자 입력 2018-05-17 21:53수정 2018-05-1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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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한국시간) 칸 국제영화제에서 열린 ‘버닝’의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과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왼쪽부터). 경쟁부문에 진출한 ‘버닝’은 나머지 20편의 영화와 더불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겨룬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함의와 은유로 가득 찬 영화. 관점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 해석될 만한 작품. 미스터리하고 모호한 인물과 이야기로 채워진 ‘버닝’이 17일 국내 개봉 이후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여러 반응을 얻고 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17일 새벽(한국시간) 현지에서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을 둘러싼 호기심 어린 궁금증이 줄을 잇는다.

‘버닝’ 세계의 설계자, 이창동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밝힌 내용과 설정에 관한 이야기는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답이다. 또한 그 자체로 ‘버닝’의 해설서가 될 법하다.

17일 오후 7시30분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진행된 ‘버닝’ 공식 기자회견에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와 함께 나선 이창동 감독이 풀어낸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시아 취재진은 물론 유럽 쪽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이창동 감독을 향했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원작이다. 어떤 부분에 끌려 선택했나.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처음이 아니다. 영화 ‘밀양’도 한 소설가의 단편소설(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이 원작이다. ‘버닝’은 하루키의 단편소설(‘헛간을 태우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이 갖고 있는 미스터리한 부분을 영화적인 미스터리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 소설의 각색 과정이 궁금하다.

“영화화가 되는 과정을 말하자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하다. 가장 먼저 일본 NHK로부터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화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엔 나보다 젊은 감독에게 기회를 주고 내가 제작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상 이뤄지지 못했다. 우리 시나리오를 작업한 오정미 작가가 (‘헛간을 태우다’를)영화화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처음 나는 쉽게 영화화할 수 없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영화적으로 우리 세상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루키의 원작 소설에는 작은 개구리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영화에선 왜 빠졌나.

“소설에는 주인공들이 대마초를 피우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한때 연극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영화에서는 종수(유아인)가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면으로 바꿨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하루키가 쓴 ‘헛간을 태우다’라는 제목은 그보다 앞선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제목 ‘반 버닝’에서 갖고 왔다. 포크너의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는 세상으로부터 고통을 받는다. 그 아버지가 분노에 휩싸여 남의 헛간을 태우는 이야기가 소설에 나온다. 나는 바로 그 아버지의 분노가 아들의 분노로 이어지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을 표현하는 데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분노’라는 주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분노를 품고 있다. 각각의 이유가 있다. 종교와 국적,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분노하는 세상이다. 그중 특히 젊은이들이 마음에 품은 분노는 더하다. 그런 분노 속에 현실에서는 무력감을 갖고 있다. 문제는 젊은이들은 이런 분노를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기면서도 자신들이 느끼는 분노의 대상은 모호하다는 거다. 요즘 세계의 문제가 바로 분노의 대상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세상은 점점 세련되게 변하고 편리해지지만 정작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는 감정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겐 이 세계 자체가 미스터리하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버닝’에는 딱 두 번 타는 장면이 나온다. 불타는 대상으로 설정한 비닐하우스와 고급승용차 포르쉐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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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본 그대로다. 비닐하우스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흔한, 농사짓는 농촌에서는 일상적으로 만나는 공간이다. 어린 나이에 종수가 바라본 비닐하우스는 마치 자기 자신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을 거다. 포르쉐는 비닐하우스와는 극단적으로 반대에 있는 설정이다. 바라고 원하지만 종수의 손에 닿을 수 없는 그 어떤 것. 서울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동네(극 중 서울 반포 서래마을)에 살고 있는, 게츠비처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차. 두 개의 이미지는 극단적이다. 종수에게 비닐하우스는 자신의 공간이고 포르쉐는 분노의 상징일 수 있다.”

-지금껏 나온 이창동의 영화와 비교해 설명이 가장 적다. 이해하기 어렵다.


“이 영화에는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인 코드는 물론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있다. 예술과 문화, 문학과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코드도 숨겨져 있다. 그걸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순하게 영화적으로만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도 단순하게는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단순한 영화적 방식으로 느끼고 받아주길 바랐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여주인공 해미(전종서)가 노을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 어떤 구상으로 이뤄진 장면인가.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두 남자의 대결로 보인다. 무력한 젊은이(종수)와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그러면서도 세련된 정체불명의 사나이(벤·스티븐 연). 어쩌면 자기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신처럼 생각하고 있는 두 인물 간의 대결로도 보인다. 둘 사이에 놓인 여자는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혼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여자로 봤다. 저녁노을이라는,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 앞에서 혼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모습. 영화에 나온 ‘그레이트 헝거’처럼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이미지로 그리고 싶었다.”

-종수가 마지막에 이르러 해미의 방에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어떤 상징성이 있나.

“남산타워가 외국인에겐 ‘서울타워’로 알려져 있다. 어느 대도시나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 도시를 내려다보는 상징적인 곳이 있다. 우리에겐 남산타워다. 해미는 그런 서울타워 바로 밑에서 살고 있다. 서울타워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잠깐 비추는 방에서 말이다. 서울의 상징인 서울타워, 그리고 가난한 젊은 여성이 사는 작은 방의 대비가 있다. 그곳에서 종수와 해미는 가난한 ‘관계’를 맺기도 하고, 여자가 없는 방에서 (종수는)요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이 홀로 자위를 하는 장면도 있다. 결국 그녀가 없는 방에서 혼자 어떤 소설을 쓰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겼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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