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종로 여관 방화 참사가 앗아간 비보이 ‘포켓’의 아버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3일 20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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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덕분에 세계무대에 설 수 있었는데…. 아버지….”

2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성심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김기주 씨(22)는 눈물만 흘렸다. 그의 아버지(55)는 20일 서울 종로구 여관 방화 참사로 숨졌다.

둘째아들인 김 씨는 ‘포켓(Pocket·주머니)’이란 예명으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비보이(B-boy)다. 11세 때 국내 비보이팀 ‘모닝오브아울’ 멤버로 세계무대에 데뷔한 김 씨는 곡예를 방불케 하는 동작(파워 무브)으로 국내외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각종 국제 비보이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김 씨는 최근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비보이 국제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가 비보를 듣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22일 귀국했다.

김 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나쁜 짓 말고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 하셨다. 아홉 살 때부터 아버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서 비보이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자리 잡으면 아버지를 편히 모실 수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빈소를 지키던 김 씨의 큰아버지(65)는 “기주가 아버지랑 유독 가깝게 지냈다. 해외에 나가면 한 달 넘도록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도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한국에 오면 아버지 식당을 찾아와 일손을 도왔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참사 전날인 19일 지인들을 만나러 종로구에 왔다가 시간이 늦어 문제의 여관에 투숙했다. 이튿날 강원 춘천에 갈 약속이 있었는데 구로구의 집에 들르면 피곤할 것 같다며 하룻밤을 묵으려다 참변을 당했다.

김 씨의 아버지는 2년 전부터 구로구에서 노모(79) 등과 함께 중국음식과 냉면 등을 파는 식당을 운영했다. 가족이 갑자기 지게 된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 씨 큰아버지는 “동생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제 막 좀 재미있게 살아가나 했더니…”하며 고개를 숙였다.

25일 김 씨 아버지는 노모 등과 함께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영 갈 수 없는 여행이 돼버렸다.

배준우 기자 jjoonn@donga.com
사공성근 기자 4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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