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1월 23일]계산왕 이춘덕 세계 정상에 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16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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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상 2학년 때 국내 최초로 주산 10단을 따낸 이춘덕 씨의 모습. 동아일보DB
서울여상 2학년 때 국내 최초로 주산 10단을 따낸 이춘덕 씨의 모습. 동아일보DB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계산왕을 다투는 제1회 계산기능세계제1결정전이 23일 일본 주판교재연맹 주최로 도쿄에서 열려 한국의 이춘덕 양(21·성균관대 회계학과 3년)이 대학 일반부문의 6개 전 종목에서 우승,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계산이 가장 빠른 사람으로 기록되게 되었다.”(동아일보 1981년 11월24일자 6면)

이 대회는 계산할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이든 쓸 수 있었다. 계산기, 주판 등 다양한 도구를 쓸 수 있었고 암산도 가능했다. 이 씨는 암산만으로 대회에 임했다. 100억 단위 숫자의 덧셈 뺄셈도 계산기보다 빨랐다. 5초 만에 10만 단위 숫자 2개의 곱셈 정답을 찾아냈다. 결과는 6개 전 종목 우승, 그는 기네스북에 이름이 올랐다.

이 씨의 이름은 그 전에도 신문 지면에 종종 등장했다. ‘주산 천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여상 2학년 때 우리나라 최초로 주산 10단을 따내는 기록을 세웠고(동아일보 1975년 7월21일 7면) 이듬해 열린 제1회 국제계산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동아일보 1976년 4월 8일자 5면) 1977년 도쿄에서 열린 국제주산경기대회 역시 개인전 우승자이자 단체전 1위의 공신이기도 했다(동아일보 1977년 8월26일자 7면). 이 씨는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탁월해 심판이 잃어버린 초시계를 비슷한 시계들 속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시계 뒤의 일련번호를 외고 있어서였다.




숫자 감각이 좋기도 했지만, 뛰어난 암산은 주산 훈련의 덕이 컸다. 이 씨는 국제계산기능올림픽 대회에서 우승한 뒤 “수에 대한 관념과 계산력을 늘리는 데 주산이 좋은 것 같아요. 주산을 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고 정신이 맑아져요”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춘덕 씨가 계산기능 세계결정전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1981년 11월 24일자 6면.
이춘덕 씨가 계산기능 세계결정전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1981년 11월 24일자 6면.


주산은 1970, 80년대에 크게 유행했다. 그 시절에 학생이었던 이들은 대개 집 앞의 주산학원에서 주판알을 올리고 내리고, 털어내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전자계산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휴대가 쉽지 않은 주판은 계산기에 밀려났다. 모교의 교사가 된 이춘덕 씨는 주판의 생존을 가늠해보던 1992년 4월19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동차가 있지만 학생들에게 달리기를 계속 가르치듯 컴퓨터가 있어도 기본적인 숫자에 대한 개념을 가르치는 기초교육으로서의 주산은 앞으로도 계속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저무는 듯하던 주산은 최근 수년 간 적잖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암산 훈련 도구로 쓰이고 있다. 연산이 수학의 기초라는 굳건한 인식에 힘입은 바 크다. 기원전 3000년 전 고안된 이 계산 도구가 인공지능 시대에도 생명력을 이어오는 셈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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