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114명 明 공녀로… 후궁 되어 순장되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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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인들의 명궁 삶’ 논문, 대부분 가무女 등 비참한 생활

“가마가 떠나 멀어져 가니 고국이 점점 아득해지네. 서로 떨어진 곳이 애처로워, 여러 산들이 꿈속의 푸르름으로 들어오는구나.”(조선왕조실록 중)

1408년 조선 초기 대표적 문신인 권근(1352∼1409)은 명나라의 공녀(貢女)로 끌려가는 여인들을 보며 이 같은 시를 남겼다. 신생 국가였던 당시 조선은 몽골족의 원(元)나라 정권이 무너진 후 한족(漢族)이 세운 명(明)나라에 새로운 기대를 걸었다. 중국과의 사대 관계 속에서 폐단이 극에 달했던 공녀 등 가혹한 조공 문화가 개선될 것이란 희망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초기 3대 황제 영락제와 5대 선덕제까지 공녀를 진상하는 악습은 여전했고, 민초들의 슬픔은 계속됐다.

최근 명나라의 공녀가 된 조선시대 여성 114명의 삶을 전수 조사한 연구가 나왔다. 임상훈 순천향대 교수가 17, 1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2017 한국여성사학회 국제여성사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명초 조선 여인들의 명궁에서의 삶’이란 논문에서 이들의 모습을 분석했다.


명나라로 끌려간 공녀들은 대부분 비참함을 면치 못했다. 1408년부터 1433년까지 25년간 총 7차례에 걸쳐 114명이 중국 황실에 진상됐다. 이들 중 98명에 달하는 여성들은 황제 개인의 유희를 위한 ‘가무녀(歌舞女)’와 음식을 하는 ‘집찬녀(執饌女)’ 등이었다.

운 좋게 황제나 황족의 후궁이 된 경우에도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순장(殉葬)’돼 꽃다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영락제가 죽자 순장된 자가 30여 명이었다. 이 중 조선 출신인 한 씨는 죽을 때 ‘어머니 저는 갑니다’라고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이 매달렸고, 이내 죽었다.”(조선왕조실록 중)

반면 황제의 총애를 받아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도 있었다. 한계란이란 이름의 여성은 57년간 명 황실에서 지내며 4명의 황제를 모셨다. 조선 조정은 그의 친오빠인 한확을 대명 외교의 민감 사항을 논의하는 외교관으로 활용했다.

또 권현비(權賢妃)는 옥퉁소를 잘 불고, 요리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영락제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임 교수는 “조선과 명나라 간의 공녀 문제는 두 나라 사이의 긴밀한 관계 등으로 인해 관련 사료가 부족해 학계에서도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라며 “여성들이 강제 이주당한 어두운 역사이지만 이로 인해 촉발된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변화상 등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관련 연구가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 여인들의 명궁 삶#권근#명나라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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