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러 붉은광장의 차르 병사論’ 꺼낸 문무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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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부스 감시하려 세운 보초… 시대가 바뀐 뒤에도 수십년 이어져”
문무일 “원점서 의심하고 다 바꿔야”… 수사관행 등 강력한 검찰개혁 예고

“예전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공중전화 부스 곁에는 ‘차르(러시아 황제) 병사’ 차림의 군인이 늘 보초를 섰대요.”

7일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팀 회의 도중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56·사법연수원 18기·사진)가 불쑥 ‘차르 병사’ 이야기를 꺼냈다.

어리둥절해하는 후배 검사들에게 문 후보자는 “수십 년을 그렇게 밤낮으로 공중전화 부스를 지켰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자리를 왜 지키는 거죠?’라고 물으니 보초를 포함해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 보초를 세운 이유는 혁명 세력이 공중전화 부스를 이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통신수단이 발달하고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어졌지만,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탓에 수많은 군인들이 보초를 서며 헛고생을 한 것이다.

문 후보자는 “검찰도 ‘차르 병사’처럼 오랫동안 과거 관행대로만 일해 왔다”며 “우리가 해 온 모든 일을 원점부터 의심하고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새 정부가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예고한 상황에서 검찰이 먼저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청문회 준비팀에 문 후보자는 “검찰이 인권보호 기관으로 거듭날 방법을 찾아보라”고 수차례 주문했다고 한다.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들에게 충분한 진술 기회를 보장하고, 변호인 참여도 적극 보장해 검찰 수사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 후보자의 오랜 지론이다. 문 후보자는 2014년 서울서부지검장으로 근무할 때 피의자와 변호인을 상대로 검사, 수사관들이 얼마나 이야기를 잘 들어줬는지 묻는 ‘인권 경청 카드’ 제도를 실시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피의자의 자백 등 진술에 의존해 온 기존 수사 관행을 깨는 일도 문 후보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엄격한 증거 중심의 과학수사로 수사 패러다임을 바꿔 검찰 수사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자는 2005년 4월∼2007년 2월 당시 신설 보직이던 대검찰청 과학수사2담당관으로 일하며 회계분석 및 디지털 수사기법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바 있다.

이날 문 후보자의 검찰 선배인 박성재 서울고검장(54·17기)과 김희관 법무연수원장(54·17기)이 사의를 표명했다. 박 고검장은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은 권력기관이 아니라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검사 본연의 임무”라는 글을 띄웠다. 오세인 광주고검장(52), 박민표 대검 강력부장(54), 김해수 대검 공판송무부장(57), 이명재 법무연수원 기획부장(57) 등 문 후보자의 동기들도 조만간 용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차르 병사론#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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