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포석 人事의 세계]시리즈를 마치며-특별좌담

  • 입력 2003년 12월 1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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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올 4월부터 매주 2회씩 연재해 온 ‘인간 포석-人事의 세계’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공사 조직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사의 ‘오늘’을 살펴보고 더욱 발전적인 인사의 ‘미래’를 조망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10일 오전 동아일보사 20층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에는 김광웅(金光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보좌관, 윤순봉(尹淳奉)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가 참여했다.》

동아일보는 올 4월부터 매주 2회씩 연재해 온 ‘인간 포석-人事의 세계’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공사 조직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사의 ‘오늘’을 살펴보고 더욱 발전적인 인사의 ‘미래’를 조망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10일 오전 동아일보사 20층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에는 김광웅(金光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보좌관, 윤순봉(尹淳奉)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가 참여했다.<편집자>

▽김광웅=지금까지 인사는 사람에 대한 것만 보아왔으나 동아일보 인사시리즈 가운데 ‘사람과 자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제는 사람과 조직의 관계를 봐야 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자리에는 직격(職格)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자리에 안 맞으면 안 된다. 명망가라고 특정 자리에 맞는 게 아니다.


▽정찬용=인사 문외한의 수준에서 지금의 직책을 맡았다. 과거엔 대부분의 인사가 사람을 평해 놓고 그 다음에 자리를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측근인사, 정실인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7만2000명에 대한 포지티브 자료를 갖췄다. 다만 인사보좌관실이 신설 직제이다 보니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백악관은 인사담당 부서의 인원이 100명이나 된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이들은 바뀌지 않는다. 삼성은 인사 모범사례로 많이 꼽히는데 어떤가.

▽윤순봉=삼성의 인사 캐치프레이즈는 ‘한 명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지금은 빌 게이츠 같은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이제는 사람 머릿속의 지혜 지식 직관을 중시하는 내생 성장이론이 각광받고 있다. 삼성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평가의 30%가 ‘인사’다. 인사를 제대로 못하면 이익을 몇조원씩 내도 보너스와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김=장관 평가에서도 부딪칠 문제지만, 아무리 훌륭해도 조직과 조응하는 사람이 있고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정=민간기업의 경우 생산량 생산성 순이익 등의 계량 지표가 있으니 정량(定量)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기구는 공공의 일이기 때문에 정량 평가가 어렵다. 정성(定性) 평가라고나 할까. 현재 국무위원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무총리실에서 19개 부처에 대해 지속해 온 평가도 있고, 감사원도 있고, 인사보좌관실도 있고, 언론도 평가를 한다. 비정부기구(NGO)들이 인기투표 비슷하게도 한다. 그러나 평가를 통해 실제 그 사람의 역량과 지도력, 일을 풀어낼 수 있는 제반능력을 측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새 정부 들어 도입한 다면평가가 기존 평가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담합에 의한 평가가 있을 수 있긴 하다.

▽윤=평가는 두 가지로 이뤄진다. 첫째는 형식지(形式知)다. 어떤 목표를 주고 어떻게 수행했나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평가시점 직전 3개월 동안 잘한 사람은 점수가 좋고, 일년 내내 잘하다 마지막에 못하면 점수가 나빠지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웃음). 따라서 객관적 자료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가 중요하다. 둘째는 암묵지(暗默知)다. 삼성은 삼각평가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 세 사람이 조직, 고객, 학문적 기여로 나눠 평가한다. 삼성은 다면평가를 도입한 지 10년 정도 됐지만, 이를 연봉 승진 급여 등의 보상과 직접 연결시키지 않고 리더십 교정 수단으로 활용한다. 인기투표의 부작용 때문이다.

▽김=정부 인사가 어려운 이유는 인사원칙간의 충돌 때문이다. 청와대 인사는 엽관주의(獵官主義), 행정자치부 인사는 연공서열주의, 중앙인사위는 실적주의를 앞세운다. 셋 다 합당한 대목이 있지만 이들 원칙이 충돌하면서 부작용이 일어난다. 어렵더라도 실적주의로 가야 한다.

▽정=엽관주의 연공서열주의 실적주의 다 일리가 있다. 인사가 나면 조직은 엽관 서열 실적 중 어떤 게 작용했는지 정확하게 안다. 그래서 “될 사람이 됐다”거나 “안 될 사람이 비벼서 됐다”는 식의 얘기가 나온다(웃음). 인사보좌관실은 인사후보를 압축해가는 과정에서 먼저 서열을 고려한다. 그렇게 10배수를 뽑고 그 다음에 실적주의다. 마지막에는 흠결, 그중에서 정치적 흠결이라고 생각하는 부문을 살핀다. 인사보좌관실은 7∼8명이 정무직 420개 직책을 관리하는데 정치적인 것과 연결이 안 될 수 없다.

▽김=노무현 정부가 색깔이나 리듬이 맞는 사람끼리 한동안 가는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 개각이 임박했다고 하니, 현 정부는 장관후보를 뽑을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 들어봤으면 좋겠다.

▽정=정무직의 경우, 직위 직무를 먼저 연구한다. 일하면서 느낀 것은 2, 3급도 전문성과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시험성적이 중요한 고과기준이다. 조직의 리더가 됐을 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컨트롤 하고, 코디네이션 할 것인지는 심사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윗사람에게 충성하기 위해 부하들은 닦달하는 리더십으로는 부처를 끌고 가기 어렵다. 인사추천회의는 리더십 중심으로 본다. 2주 전에 어떤 자리를 뽑아야 한다고 예고도 한다.

▽김=인사에 관한 한 기업이 정부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민간의 인사 노하우를 정부와 공유할 방법은 없을지….

▽윤=기업인사가 정부보다 앞서가는 것이라기보다 환경이 다를 뿐이다. 기업은 세계 1등의 경쟁자와 붙어야 한다. 반면 국가경영은 독점산업이다. 모방을 중시하던 단계에서는 기업도 연공서열을 선호했다. 하지만 세계 1등 수준으로 가면 모방 대신 창조를 해야 한다. 여기서 인센티브가 중요하다. 삼성의 인사를 표현한 용어로 어느 언론에서 ‘능위공록(能爲功祿)’이란 표현을 썼다.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고, 공이 있으면 녹봉을 준다는 뜻이다. 실제 삼성에서는 전무와 상무의 연봉이 역전되는 상황이 생긴다. 실적에 따라 연봉은 확 올랐다가 쭉 떨어지기도 한다.

▽김=조선시대에는 개국공신에게 자리를 안 주고 녹봉을 줬다. 포스트가 아니라 돈으로 보상해준 것이다. 과거 정권들은 그 부분에서 헷갈린 측면이 있다.

▽정=예전에야 공신들에게 땅을 줬다지만 요즘 시대에는 국유지를 떼어 줄 수도 없고…(웃음). 노무현 정부는 그런 분들을 각종 위원회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결정기구가 아닌 논의기구에 여럿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김=공무원사회도 변화를 줘야 한다. 9등급의 계급을 5등급 정도로 줄이고 진입경로도 다양화해야 한다. 5, 7, 9급 시험과 행시를 하나로 통일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빨리 승진시키고, 성과 많은 사람은 연봉으로 보상하는 방법도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계급단계 축소는 검토해보지 않았지만 진입경로 다양화는 인사혁신 로드맵에도 있고, 현 정부 임기 내에 시행해보려 한다. 각종 고시를 통합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700만 해외동포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윤=삼성 CEO 중 절반이 외부인사다. 그 정도로 피를 섞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난자가 근접해 온 수백 개의 정자 가운데 딱 하나만 선택하는 기준은 바로 자신과 가장 다른 염색체 배열을 가졌느냐의 여부다. 인류가 멸종되지 않은 것도 이 덕분이다. 같은 이치로 정부도 기업도 생존을 위해선 다원성, 다양성의 원리를 인사에 도입해야 한다.

▽정=민과 관 사이의 교류뿐 아니라 중앙과 지방 사이의 교류도 강화할 생각이다. 부처별로 지방 출신을 위한 아파트를 준비하도록 했다. 내년부터 전세금 없이 100만원 정도의 보증금에 월세 20만∼30만원 정도 하는 주택을 마련토록 했다. 또 ‘고위공무원단’을 도입해 그 첫걸음으로 20∼30개 고위 직위를 선정하고, 이를 부처와 부처 간에 교류케 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가령 기획예산처와 농림부의 국장, 환경부와 건설교통부의 국장을 맞바꿀 수 있다.

▽김=업무가 전혀 다를 경우에는 힘들 수 있으니 우선은 기획관리 분야, 즉 감사 인사 예산 등의 분야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또, 장애인이나 여성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분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정=3급 이상 고위직에서 여성 비율이 5%다. 5년 동안 이를 10%로 올릴 계획이다. 누구는 절반으로 올리라지만, 무리하지는 않겠다. 인사사유가 생기면 일단 여성부터 그 자리에 맞춰본다. 내년에는 인사담당관실에 여성과 장애인 문제를 전담하는 여성비서관을 두려고 한다.

▽김=삼성에서도 여성 부회장 얘기는 못 들어봤다. 정부보다 차별이 큰 건지…(웃음).

▽윤=아직은 상무 정도다. 차별이라기보다는 공급이 양적으로 부족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여성 인력의 최고위층 진출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국내에서 신규 노동력을 확보하는 길은 여성밖에 없다. 둘째 시대가 논리적인 세상에서 감성적 세상으로, 하드에서 소프트로 변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여성들이 단연 우월하다. 아트 디자인, 홍보 등 여성들이 잘할 부서가 점점 많아진다. 10년만 지나면 확 달라질 것이다. 여성들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

▽김=제대로 된 인사관리를 위해선 민이건 관이건 인적 자료가 체계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자료를 모으고 개인의 보직경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추적해서 리뷰도 해보고 통계 시뮬레이션도 돌려봐야 한다. 이런 작업이 이뤄질 때 이는 곧 우리 모두의 조직 역량을 탄탄하게 하는 자산이 되지 않겠는가.

진행=서영아기자 sya@donga.com

정리=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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