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토요판 커버스토리]오∼ 웹툰 코리아
더보기

[토요판 커버스토리]오∼ 웹툰 코리아

동아일보입력 2014-06-07 03:00수정 2014-06-07 03:19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웹툰, 한류열풍 제3탄 “신선하고 창의적이다.”

4월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영국 런던 도서전’에서 외국인들이 자주 꺼낸 말이다. 누구의, 어떤 작품을 보고 이런 말을 했을까. 도서전에는 황석영 이문열 신경숙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참석했다.

찬사의 대상은 이들의 한국 문학 작품이 아닌 ‘웹툰’이었다. ‘웹(web)’과 ‘카툰(cartoon·만화)’을 합성한 말로 인터넷에서 연재하는 만화를 뜻한다. 도서전에 설치된 웹툰 전시를 보면서 ‘21세기 디지털 문화가 낳은 획기적인 장르다’ ‘이런 만화가 있었냐’는 반응이 많았다.

도서전에 참석한 웹툰 ‘미생’의 윤태호 작가(45)의 팬 미팅에는 수백 명이 몰렸다. 윤 작가는 “한국 웹툰은 올해를 해외 진출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한 인기를 넘어 ‘한국 드라마’ ‘케이팝(한국 대중가요)’에 이은 ‘한류(韓流) 3번 타자’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에서 웹툰 팬이 증가하면서 국내 업체의 해외 진출도 가속도를 내고 있다. 네이버는 하반기부터 미국, 영국, 호주, 중국에 영어, 중국어로 번역된 웹툰을 서비스한다. 웹툰 유통업체 타파스미디어는 2012년부터 북미에 최초로 웹툰 포털사이트 ‘타파스틱’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다음은 지난달부터 타파스틱을 통해 웹툰 5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웹툰 유통업체 레진코믹스는 일본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정부도 지난달 28일 “케이팝에 이어 만화 한류를 키우겠다”며 ‘만화산업 육성 중장기 계획(2014∼2018)’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세계 만화 시장 매출 규모는 9조 원. 이 중 웹툰의 비중은 2017년 22.8%(3조 원)로 예측된다. 문체부 강수상 대중문화산업과장은 “웹툰은 한국이 개발한 창의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에 전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할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웹툰 한류’, 가능한 꿈일까.

김윤종 zozo@donga.com·박훈상 기자  

관련기사

▼ 1만여종 만화 모인 사이트, 맨 윗자리에 한국 웹툰 ▼


1# 프랑스 파리의 풍경

3일 오후 8시 프랑스 파리. 일과를 마친 크리스토퍼 레이몽 씨(38)는 저녁 식사 후 머리를 식힐 겸 TV 대신 노트북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뉴스를 몇 개 챙겨본 후 세계 각국의 만화가 모여 있는 만화 공유 사이트를 클릭했다. 그는 이 사이트에서 인기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웹툰 ‘노블레스’를 즐겨 본다. 레이몽 씨는 한국 웹툰에 대해 “소재가 독창적이고 그림 터치도 달라 일본 망가(漫畵·まんが), 미국 그래픽노블과는 무언가 다른 콘텐츠라고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2#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온 편지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는 요즘 그림 한 컷 한 컷에 더 공을 들인다. 3월에 받은 한 통의 편지 때문이다. 당시 e메일을 체크하던 이 작가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이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메일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작가님의 웹툰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독일어 번역 버전은 아직 50여 편밖에 되지 않아 아쉬워요. 이 작품을 심리학 수업 발표에 인용하고 싶은데 허락해주세요.”

‘한국 웹툰’을 즐기는 외국인들

프랑스와 독일뿐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 ‘웹툰’이 읽히고 있다. 웹툰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콘텐츠 공유 사이트를 통해 확산된다. 특히 ‘망가폭스(mangafox)’를 비롯한 만화공유 사이트가 한국 웹툰을 세계로 확산시킨 주요 루트다. 이 사이트에서는 세계 각국의 만화 1만여 종이 영어로 번역돼 올려진다.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는 불법 사이트지만 세계 만화의 추세와 인기를 알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3일 현재 망가폭스 인기만화 순위를 보면 웹툰 ‘노블레스’가 1위다. 이어 ‘브레이커2’(13위), ‘소녀더와일즈’(16위), ‘더 게이머’(20위), ‘갓 오브 하이스쿨’(21위), ‘신의 탑’(24위) 등 25위권에 한국 웹툰이 6개(24%)나 된다. 그간 망가폭스 인기순위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같은 망가가 휩쓸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신의 탑’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 등 한국 웹툰이 순위권에 들기 시작해 1∼10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늘었다.

또 다른 만화공유 사이트인 ‘바토토(batoto)’에는 한국 웹툰이 영어뿐 아니라 필리핀어, 터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루마니아어, 폴란드어로 번역돼 게재된다. 중국에서도 한국 웹툰 100여 편이 블로그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 중이다. 국내 누리꾼이 해외 드라마를 번역해 자막을 달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듯 외국인들도 신작 웹툰이 나오면 바로 번역해 커뮤니티에 띄운다. 네이버 김준구 웹툰&웹소설 부장은 “모두 불법으로 번역돼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어쨌든 웹툰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 사이트들을 통해 ‘국가별 인기 웹툰’을 분석한 결과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는 ‘노블레스’ ‘브레이커2’ ‘신의 탑’ ‘갓 오브 하이스쿨’ 등 판타지풍 웹툰이 인기였다. ‘마음의 소리’ ‘다이어터’와 같이 일상 속 소소한 에피소드를 다룬 생활형 웹툰은 중국에서 호응이 컸다. 일본에서는 한국 전통 신화를 다룬 ‘신과 함께’가 인기다.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일본 작가마저 나왔을 정도.

국내 웹툰 작가들은 세계적인 인기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웹툰 ‘신의 탑’의 SIU 작가,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용제 작가, ‘노블레스’의 손제호(글) 이광수(그림) 작가는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당시 웹툰 작가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이들은 해외 팬이 오지 않을까 봐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사인회 당일 ‘한국 웹툰 팬’을 자처하며 유럽인 수백 명이 몰렸다. 안전사고가 우려돼 경비요원까지 출동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한 여성은 손수 한국어로 써온 팬레터를 작가들에게 전달했다. 독일 교사 마리아 씨(38)는 “학생들에게 스트레스 풀고 기운 낼 때 한국 웹툰을 권한다”고 말했다. 웹툰 업체들은 전 세계의 웹툰 잠재 독자가 10억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왜 웹툰에 빠졌나… 일본 ‘망가’, 미국 ‘그래픽노블’과의 차별점 때문

웹툰은 2000년대 초반 국내 포털사이트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2005, 2006년을 기점으로 강도하 등 실험적인 웹툰 작가가 늘면서 웹툰 특유의 연출기법이 개발됐다. 장르도 다양해졌다. 2010년 이후에는 인터넷 기반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웹툰이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는 ‘모바일 시대의 킬러 콘텐츠’라는 찬사까지 받게 됐다.

이 같은 호응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까지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팀이 만난 해외 웹툰 팬 중 상당수는 “웹툰의 매력은 일본 망가나, 마블코믹스로 대변되는 미국의 그래픽노블과 무언가 다르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자국에는 없는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츠’라는 이미지를 준다는 것이다.

웹툰의 가장 큰 차별점은 ‘세로 스크롤’, 즉, 책장을 넘기는 대신에 마우스 스크롤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서 읽는 행위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양면(兩面) 연출을 기본으로 하는 망가, 그래픽노블에선 표현할 수 없는 창의적 그림 연출이 가능해진다. 기존 만화는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그 반대로 읽어야 하며 각각의 장면은 ‘칸’이라는 물리적 한계 속에 갇혀 있다. 반면에 웹툰은 두루마리 펼치듯 올렸다 내렸다 하며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한 호흡으로 내용을 길게 연결해 읽는 느낌을 준다.

책장을 넘길 때 나타나는 영상의 끊김이 덜해 긴장감, 몰입감이 높아진다. 스크롤을 통해 줌 인·아웃, 페이드 인·아웃, 반전연출 같은 영화적 기법도 적용할 수 있다. 100% 컬러 그림에 배경음악(BGM), 플래시 효과를 넣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반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망가, 그래픽노블은 기존 출판만화를 스캔해 그대로 옮긴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웹툰만의 독특한 기법은 다수의 작가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집단지성의 결과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도형 만화스토리산업팀장은 “웹툰 초기에 작가들이 기존 만화처럼 먹선으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칸을 나눠보는 등 다양한 실험과 실패를 반복했다. 그 결실이 숙성해 인터넷에 최적화된 포맷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 “아래로 쭉 읽기 편해… 日 망가엔 없는 매력” ▼
웹툰은 한국 특유의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인터넷 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웹툰을 읽으려면 인터넷 속도가 빨라야 한다. ‘웹툰’이란 장르가 일본,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먼저 생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웹툰을 보기 위해 특정 프로그램을 깔 필요도 없다. 링크만 걸어두면 클릭 한 번으로 볼 수 있다. 웹툰은 작가가 연재를 시작하면 누리꾼은 댓글로 리뷰와 비평을 쓴다. 작가가 댓글에 답하는 피드백도 빠르다. 독자의 반응이 스토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국 인터넷 문화의 전형성이 웹툰에 스며들어 있다.

농부, 경찰, 교사 등 다양한 작가군… 영상 콘텐츠의 원천 되기도

외국 웹툰 팬들은 “형식뿐 아니라 내용물, 즉 스토리 측면에서도 웹툰은 독특하다”고 평가한다. 이는 작가의 창의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제작 시스템 덕분이다.

과거 만화 작가가 되려면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도제식 수업을 거친 후 데뷔해야 했다. 하지만 웹툰은 포털사이트 내 웹툰 작가 데뷔 코너나 개인 블로그를 통해 곧바로 작품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신진 작가들이 매일같이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소재도 천차만별이다.

실제 인기 웹툰 ‘뽈스토리’(‘폴리스 스토리’의 줄임말)를 그린 작가는 현직 경찰이다. 서울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 강현주 경사(33·여)는 2007년 4월부터 일선 지구대 경찰관의 에피소드와 애환을 그린 이 웹툰을 인터넷에 연재했다. 이 작품은 연재 1년 만에 누적 조회수 100만 회를 돌파했고 2010년 단행본으로도 출판됐다. 강 경사는 “자신의 직업이나 전문성, 일상 경험을 웹툰으로 옮겨 데뷔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 ‘매지컬 고삼즈’를 그리는 seri(본명 이가영)와 비완(본명 최윤경) 작가는 현직 교사다. 두 작가는 학교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판타지 형식의 웹툰에 녹였다.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을 그리는 이현민 작가는 9년 차 광고회사 직원 출신. 그는 광고제작사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웹툰으로 풀어냈다. ‘달이 내린 산기슭’을 연재 중인 손장원 작가는 지질학 박사 출신 경력을 살려 우리 땅에 얽힌 이야기를 오래된 지층과 산속에 사는 신비한 정령과 결합했다. ‘오!솔로’를 연재한 정이리이리 작가는 현직 농부다.

일각에서는 다양한 작가군 때문에 웹툰의 그림, 스토리의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다양한 작가군에서 다채로운 소재와 기획이 나온다”고 반박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웹툰은 소재의 다양함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의 원천 소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배트맨’ ‘아이언맨’ 등 미국의 그래픽노블이 드라마, 영화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과 유사한 셈이다. 지난해 690만 명을 모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도 웹툰이다. 2010년 윤태호 작가의 웹툰 ‘이끼’가 영화화되면서 340만 관객을, 2012년 강풀 작품을 영화화한 ‘이웃사람’, ‘26년’이 각각 240만 명, 290만 명을 모았다.

영화계에선 “한국 영화의 독자적인 시나리오 빈곤을 웹툰이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올해도 웹툰 ‘패션왕’ ‘내부자들’ 등이 영화화된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는 “스크롤 방식으로 보는 웹툰은 전개 속도가 빨라 영상으로 제작하기 편하다”며 “시장도 성장세라 더 독특하고 새롭고 다양한 웹툰이 나오고 대중문화 이야기의 원천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웹툰 한류’를 위하여…

세계 만화산업계는 웹툰을 불황에 빠진 만화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희망’으로도 본다. 만화산업은 1994년을 기점으로 불황에 빠진 상태다. PC와 게임의 등장으로 인쇄만화의 인기가 감소한 데다 불법 복제와 온라인 확산이 쉬워져 만화산업 자체가 위축됐다.

각국 만화가, 출판사들이 새로운 만화 퍼블리싱(publishing) 모델을 고민하던 차에 웹툰이 등장한 것. 웹툰은 만화 콘텐츠 온라인 상용화의 첫 성공 사례다. ‘위키피디아’에도 “웹툰은 한국에서 상용화한 ‘만화 퍼블리싱 모델’”로 정의돼 있다.

하지만 ‘웹툰 한류’를 활짝 꽃피우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웹툰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적은 데다 저작권도 보호되지 않아 창작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웹툰은 대부분 네이버, 다음 등에서 무료로 연재된다. 포털사이트들이 작가에게 원고료를 지급하지만 감상 자체가 무료인 탓에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수입 수준이 높지 않다. 원고료를 제대로 주려면 웹툰을 유료화해야 하지만 각종 웹하드, 온라인 커뮤니티 불법 공유로 유료화하기도 쉽지 않다.

‘만화는 공짜’라는 인식도 문제다.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 것은 우연이자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웹툰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법안 등을 통해 양질의 작가가 계속 나올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웹툰 한류’를 위해선 번역 지원이 절실하다. 만화 대사는 간결한 구어체 위주로 돼 있어 만화 전문 번역가가 필요하다.

해외에는 웹툰을 불법 게재한 후 독자를 모아 광고 수익을 올리는 불법 공유 사이트도 많다. 해외 사이트에서의 저작권 침해는 작가나 웹툰 업체가 대처하기 어렵다. 웹툰 유통업체 타파스미디어 김창원 대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해외 불법 사이트 모니터링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개별 작품보다는 한국 웹툰의 그림, 연출 스타일, 나아가 플랫폼과 수익모델을 정교하게 구축해 이를 패키지로 수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에 웹툰 플랫폼을 수출하고 그 플랫폼을 채울 콘텐츠는 미국, 유럽, 중국인 작가들로 우선 채우자는 전략이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는 “한국 작가의 작품 위주로만 해외에 진출하면 언어적, 정서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해외 작가로 하여금 한국 웹툰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게 하고 국내 업체가 만든 웹툰 플랫폼에 이를 연재하는 등 플랫폼 자체를 보급해야 ‘웹툰 한류’가 완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러시아서 온 팬레터, 외계어인가 싶어 당황했죠 하하” ▼

한국 웹툰 바람 이끄는 ‘노블레스’ 손제호-이광수 작가
경기 시흥시 작업실에서 만난 웹툰 ‘노블레스’의 이광수(왼쪽), 손제호 작가가 노블레스의 장면들을 보여주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둘은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고 싶어 출판만화 대신 웹툰에 도전했다가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웹툰의 작가가 됐다. 시흥=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웹툰 작가들은 구글 번역기를 돌린다. 팬레터를 읽기 위해서다.

웹툰 ‘노블레스’의 손제호(37·글), 이광수(33·그림) 작가는 세계 각지 팬들이 보낸 e메일을 일주일에 10∼20통씩 받는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타갈로그어(필리핀), 태국어까지 언어도 다양하다. 영어 e메일은 ‘amazing’(놀라운) 같은 익숙한 단어가 읽히지만 러시아어 e메일을 받고선 외계어인 양 당황했단다.

번역기로 돌린 메일에는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스크롤로 내려 보니 신기하다”, “웹툰이든 책이든 하루빨리 정식으로 번역된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일부 팬들은 자국어로 쓴 메일을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한국어로 바꾼 다음 보내기도 한다.

어둠의 만화 시장에서 1위

‘노블레스’로 웹툰 한류를 이끄는 손제호, 이광수 작가를 경기 시흥시 이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 책장에는 일본 망가(만화)를 대표하는 일명 ‘원나블’(만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의 앞 글자를 딴 말) 만화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전 세계 만화 1만여 종이 불법 번역돼 올라오는 영어권 불법 만화 공유 사이트 ‘망가폭스’에서 ‘노블레스’는 원나블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홈페이지 메인에는 ‘노블레스’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두 작가는 1위 소식에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출판만화인 ‘원나블’과 매체가 다르니 단순 비교가 어렵습니다. 외국에서 많이 본다고 하지만 불법 번역판이니 마냥 좋아할 수도 없어요.”(이)

“해외에도 웹툰 시장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한국 웹툰이 전 세계에서 읽히고 그 큰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고 싶습니다.”(손)

‘노블레스’는 세계인에게 익숙한 소재인 뱀파이어 전설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절대강자인 주인공 ‘카디스 에트라마 디 라이제르’(줄여서 ‘라이’라고 부른다·오른쪽 그림)가 820년 만에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인간을 위해 뱀파이어, 변종인간 같은 악의 세력과 맞서는 내용을 그렸다. 라이가 고등학교 학생으로 생활하며 현대 문명에 어색해하는 유머코드도 담겨 있다.

전 세계에서 웹툰 한류를 이끌어낸 데는 주인공 라이의 힘이 컸다. 주인공의 매력으로 승부하는 슈퍼히어로 그래픽노블의 성공과 닮아 있다. 라이는 정신지배 능력을 갖고 있지만 힘을 사용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든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팬들도 인터넷에서 라이가 죽어도 노블레스를 계속 볼지를 투표에 부치고 토론까지 벌인다. 남성 팬들은 ‘멋있다’고 환호하고 여성 팬들은 ‘반했다’며 지지를 보낸다. 손 작가는 “라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기에 진짜 살아있는 존재처럼 차를 마시는 자세, 타인을 바라보는 눈빛까지 매력과 분위기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누구나 매력을 느끼고 감탄할 캐릭터로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라이의 폭발력은 굉장했다. 2009년 3월 76화에서 라이는 친구를 위험에 빠뜨린 적을 무릎 꿇게 하고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라고 내뱉는다. 이 한마디 대사로 노블레스는 네이버 웹툰 순위 1위로 치솟았다. 곧 “This is the difference between your and my eye-level”로 번역돼 세계로 퍼졌다. 이 작가는 “제호 형이 건네준 원고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시나리오를 그림으로 그리고선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했다. 손 작가도 “스토리를 넘기고 웹툰을 업로드하는 마지막까지 그 대사를 매만졌다. 흔한 문장인데 캐릭터의 느낌을 어떻게 살릴까 며칠 고민했다”고 했다.

“내게 없는 재주에 끌렸다”

두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상대의 재주에 이끌려 만났다.

2007년 전북 익산에 살던 이 작가는 경기 고양시에 사는 친한 형을 만나러 왔다가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손 작가를 우연히 만났다. 당시 손 작가는 2004년 장르소설 ‘비커즈’로 이름을 알린 프로 작가였고, 이 작가는 만화가 데뷔를 꿈꾸는 아마추어였다.

이 작가는 친한 형 집에서 손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소설 속 이야기에 푹 빠져 앉은 자리에서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그는 “만화에서 그림이 전부라고 믿었고 만화를 보면 그림체만 봤다. 형의 소설을 읽고서야 이야기의 매력에 눈을 떴다”고 했다. “머릿속엔 ‘비커즈’를 만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가진 돈 탈탈 털어 맥주를 사서 형의 방문을 두드렸어요.”

손 작가는 단박에 부탁을 거절했다. 데뷔도 안 한 지망생이 뛰어난 그림 솜씨가 필요한 판타지를 그려낼 수 있을지, 설사 시작한다고 해도 완결할 수 있을지 못 미더웠다. 소설로 나온 이야기를 만화로 옮기면 독자가 궁금해할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이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비커즈’ 등장인물을 올 컬러로 그려 손 작가에게 보냈다. 같은 인물도 여러 모습으로 석 달 동안 꾸준히 그렸다. 손 작가는 “광수의 그림을 보는데 실력이 정말 뛰어났다. 이 친구라면 내가 머릿속으로 펼치는 상상을 그림으로 옮기겠구나란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출판만화 대신 웹툰을 선택했다. 지면의 한계에 묶이지 않고 웹툰에서 마음껏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2007년 12월 ‘노블레스’를 네이버, 다음에 도전만화로 올렸다. 6개월 만에 네이버에서 정식 연재 요청을 받았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안개가 가려 뿌연 길이었습니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인생을 건 모험이었죠. 그래도 그때도 일본에 가자, 세계로 가자고 서로 북돋우며 꿈은 크게 가졌습니다.”(손, 이)

누적 조회수 13억

올해 두 사람은 건강 문제로 두 달 이상 연재를 쉬었다. 손 작가는 1월 견갑골 종양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양성 종양이라 제거 수술만 받았지만 첫 진단에서 악성 종양 가능성이 크다고 나와 마음고생을 했다. 손 작가는 “아내와 어린 딸도 걱정됐지만 노블레스를 끝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말했다.

3월에는 이 작가가 긴장성 기흉으로 수술을 받았다. 웹툰만 그리느라 건강 관리를 못했다는 그의 가죽 의자 팔걸이는 닳아서 망가져 있었다.

노블레스는 2007년 12월부터 최근까지 324회가 연재되는 동안 누적 조회수가 13억 건을 넘었고 단행본도 약 12만 부가 팔렸다. 이제 느긋해질 만도 한데 반대였다.

“육신은 여기 있지만 정신은 노블레스 세계 속에 살고 있어요. 이제 더 많은 웹툰 작가와 작품으로 경쟁해야 하니 더 치열하게 삽니다.”(손)

“단순한 순위 경쟁은 신경 안 쓸 때가 많아요. 오히려 그림을 그릴 때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합니다. 거기서 이기면 성취감이 더 큽니다.”(이)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웹툰#합류#케이팝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