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교과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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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서양에서 교육학적 의미를 지닌 최초의 교과서는, 체코의 교육사상가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의 ‘감각 세계의 그림’(1658년)이다. 다양한 사물과 상황을 묘사한 그림과 해설이 실려 있다. ‘세계도회(世界圖繪)’로도 불리는 이 책은 19세기 중반까지도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널리 읽혔다. 독일 문호 괴테가 “이 책 외에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낼 만한 책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 중중 때인 1541년 박세무가 편찬한 ‘동몽선습(童蒙先習)’이 대표적인 초등 교과서로 일컬어진다. 김안국 민제인 등이 편찬했다는 설도 있는 이 책은 서당에서 초보 학동들이 반드시 읽어야 했다. 내용의 절반 이상은 한국사와 중국사여서 수신(修身)과 역사 과목을 겸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최초의 근대적 교과서는 갑오개혁 중이던 1895년에 나온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이다. 일본 ‘고등소학독본’을 우리 실정에 맞게 개정한 책이다. 1910년 일제 총독부에 의해 발매 금지당한 비운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 첫 교과서는 미 군정청 학무국이 1946년에 펴낸 한글 첫걸음, 국어독본, 공민, 국사, 음악, 습자, 지리 교과서였다.

대한민국의 첫 교과서는 1948년 6월에 나온 국정 교과서 초등 47종, 중등 6종 등이다. 영이, 철수, 바둑이가 이때부터 등장했다. 초등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는 제목이 ‘바둑이와 철수·국어1-1’이었으니, 강아지 이름이 제목에 먼저 나오는 전무후무한 교과서일 듯하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 교과서는 많은 사람이 처음 가져보고 읽어보는 책이었다. 더러워질세라 비료포대를 다려 겉을 싸기도 하였다.

“산골 작은 마을이어서 집에 책이 있을 리 없었다. 마을에서 교과서 외에 책을 본 기억이 없다.” 1948년생 김용택 시인의 회고다. “들에는 고운 꽃이 피어 있습니다. 정희는 꽃을 5송이 꺾었습니다. 그중에서 2송이는 동생을 주었습니다. 몇 송이 남았습니까?” 김용택 시인이 배웠을 1950년대 중후반 초등 2학년 산수 교과서 내용이다.

교과서는 교육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는 지식과 규범,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 형식과 제도가 한 시대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의 말에서, ‘정부’를 ‘교과서’로 바꾸어도 뜻이 통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동몽선습#교과서#감각 세계의 그림#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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