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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원로배우 최은희 92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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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원로배우 최은희 92세로 별세

조윤경 기자 입력 2018-04-16 21:53수정 2018-04-1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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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 최은희 씨(본명 최경순)가 16일 오후 4시 반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생전 13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평가받았다.

1926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배우 문정복의 소개로 극단 아랑에 연구생으로 들어가 해방 전까지 활동했다. 해방 후 재건된 토월회, 극예술협회 등에서 무대생활을 했으며, 신경균의 ‘새로운 맹서’(1947년)를 통해 영화에 데뷔했다.

배우 황남의 권유로 신상옥 감독의 ‘코리아’(1954년)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신 감독과 신필름 영화의 전문 배우로 활동했다. 그 무렵 신 감독과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꿈’, ‘젊은 그들’(1955년), ‘무영탑’(1957년) 등을 거쳐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년)이 흥행하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춘희’(1959), ‘돌아온 사나이’(1960) 등 최 씨가 출연한 작품들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성춘향’(1961)이 크게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성춘향’은 두 달 동안 서울에서만 36만1000여 명이 봤다. 당시 국내 상영 외국 영화까지 통틀어 역대 최다 관객이었다. 1968년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관객이 36만2000여 명에 이르기까지 7년 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이었다.

이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1961년), ‘열녀문’(1962년), ‘쌀’, ‘로맨스 그레이’, ‘강화도령’(1963년), ‘벙어리 삼룡’, ‘빨간 마후라’(1964) 등 대작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한국의 여성상을 오롯이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65년에는 한국영화 사상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 데뷔했다. 봉건시대 고단했던 여성의 삶을 대변한 영화 ‘민며느리’를 통해서다. 영화는 가난한 과부의 딸인 최 씨가 열 살짜리 신랑과 결혼해 부잣집 민며느리로 들어가 겪는 고된 시집살이를 그렸다. 이후 ‘공주님의 짝사랑’(1967년), ‘총각선생’(1972년) 등을 연출했다.

후학양성에도 관심을 쏟았다. 1966년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했고 1969년엔 교장으로 취임했다. 197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화출연과 극단 배우극장 설립 등 무대 활동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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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고인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1978년 안양영화예술학교 교류사업차 방문한 홍콩에서 돌연 북한으로 납치된 것. 북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1986년 3월 베를린영화제 참석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극적으로 망명에 성공했다. 남편과 미국에서 체류하다 1989년 5월, 한국 땅을 밟았다. 11년만이었다. 고인은 2007년 펴낸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의 서문에서 “500년을 산 것처럼 길고 모진 시절이었다”고 자신의 삶을 요약했다.

고인은 1984년 ‘돌아오지 않은 밀사’로 체코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을, 1985년 ‘소금’으로는 모스코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영화제 특별공로상(2006년), 한민족문화예술대상(2008년), 대한민국 무궁화대상(2009년), 대종상 영화공로상(2010년) 등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고 신상옥 감독과의 사이에서 둔 아들 정균 씨와 딸 명희 씨가 있다. 정균 씨는 “한 평생 영화밖에 모르셨고, 아들이 바르게 자라길 바라던 엄한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8시. 02-2258-5940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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