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선수 주희정과의 첫 만남은 대학교 1학년이던 1995년이었다. 당시는 까까머리 고등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숙맥이었다. 구수한 부산사투리에 서울 지리는 전혀 몰랐고, 지하철도 탈 줄 몰랐다. 담배는커녕 술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것은 오로지 농구뿐이었다. 하루는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공휴일이었는데 연습을 하러 간단다. “심심하니 같이 농구 좀 하다 가라”고 해서 체육관에 함께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혼자 2시간 땀을 뺐다. 물어보니 팀 휴식일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혼자 개인훈련을 한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 쉽게 안 고쳐지는지 ‘미련한 놈’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밤에 개인훈련을 했다. “적당히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경기도 많이 안 뛰는데 이렇게 안 하면 몸에 힘이 넘쳐 잠이 안 온다”며 웃었다. 비시즌에 전화해서는 “어디 농구할 때 없느냐”고 해서 동호인들이 농구하는 곳에 함께 간 적도 있다. 2015∼2016시즌에는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숨기고 경기에 출전했고, 한 번 더 이겨보겠다고 후배 한 명을 데리고 잠실체육관을 따로 찾아 슛 연습까지 한 ‘농구에 미친 놈’이다.
그만큼 농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주희정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은퇴를 결심하기 전 “지금이 좋은 때인 것 같다”고 권유했지만, 모든 결정이 내려진 뒤 시간이 흐를수록 미안해졌다. ‘더 하고 싶었는데 내가 괜히 부추겼나’ 싶었다. 경기장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친구를 당분간 코트에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은퇴 기자회견 하루 전인 17일 “(기자회견에) 올 거지”라는 물음에 “못 갈 것 같으니 나중에 보자”라고만 답했다. 미안한 마음이 한 구석에 남아있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울게 뻔한데, 그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다.
20년 넘게 옆에서 지켜본 주희정은 ‘진정한 프로’다. 농구에서만큼은 ‘대충’이 없다. 훈련을 더 하면 했지, 거르는 법은 없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했다. 30대 중반 이후로는 “나이가 먹을수록 살이 찌면 안 된다”며 비시즌 동안 체중관리까지 했다. 그렇게 힘겹게 달려온 만큼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를 찾을 때도 됐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직 못했다. “친구야, 이제는 마음껏 푹 쉬자. 그동안 진짜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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