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韓美훈련 중단, 北비핵화 진전 없이 ‘선물’ 준 나쁜 선례 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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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방침을 밝히면서 두 나라 군 당국이 공식 협의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대북 군사적 압박에 대한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한미 간 협의를 지시했고, 미국 국방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취지를 충족하는 옵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의 잠정 중단 또는 연기 결정이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밝힌 연합훈련 중단은 일단 한미 간 협의 절차를 거쳐 결정하는 형식을 갖추는 모양새다. 어떤 연합훈련이 대상이 될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등 협의할 사안이 적지 않겠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을 사후 협의하는 과정이어선 안 된다. 방어적 연례훈련을 협상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부터 큰 문제지만 북한의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없음에도 압박 수단을 포기한 과정 또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면밀한 안보대비책을 마련한 뒤 발표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전제가 있는 만큼 언제든 훈련을 재개할 태세도, 나아가 훈련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그에 따른 안보 공백을 메울 방안도 철저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걱정스러운 것은 연합훈련 중단이 한미동맹에 기반을 둔 대북 안보태세의 실질적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연합훈련은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 전개가 핵심인데 그 훈련이 중단되면 대응력의 현저한 약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주한미군 철수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어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차원의 이슈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북-미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동맹도 거래로 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훈련 중단 같은 일방적 결정을 또다시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정이 이러니 북한은 벌써 대남 공세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남북 군사회담에 나온 북측 대표가 “다시는 이런 회담 하지 말자”며 고압적 태도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미군에 대한 전력 의존도가 월등히 높은 비대칭 동맹에서 미국만 믿고 있을 수 없는 한국의 처지를 새삼 일깨운다. 최근 일각에서 평화 무드에 맞게 국방력 확충계획도 축소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고 한다.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자강(自强)에 더욱 매진할 때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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