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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막히면 화장실도 못가고 운전만… 휴게실 소파엔 뽀얀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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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막히면 화장실도 못가고 운전만… 휴게실 소파엔 뽀얀 먼지

최지선 기자 , 신규진 기자 , 정임수 기자 입력 2017-07-12 03:00수정 2017-07-1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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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버스’ 운전사 실태 살펴보니
11일 경기 오산시 오산교통 휴게실에 낡은 소파 2개가 놓여 있다. 하지만 쉬는 운전사가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휴게실 입구에 오산교통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 회사는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를 운행한 곳이다. 오산=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휴게실’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철문에 너덜너덜 붙어있었다. 문을 열자 33m²(약 10평) 남짓한 시멘트 바닥에 3인용 소파 2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앉는 사람이 드문 탓인지 소파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구석에 놓인 새카만 대걸레의 퀴퀴한 냄새로 코끝이 찌릿했다. 필터에 녹이 슨 15년 된 에어컨에선 미지근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실내 곳곳에 거미줄도 보였다.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M5532번) 운전사 김모 씨(51)의 소속 버스회사인 오산교통의 휴게실이다. 이름은 휴게실이지만 한눈에도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1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곳 주변에 5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휴게실을 찾는 운전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 회사에는 127명의 운전사가 있다.

하루 15시간 넘게 장거리 운행을 하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버스 운전사들의 피로 누적이 졸음운전 참사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김 씨 역시 전날 19시간 동안 근무하고 7시간 반 만에 또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를 냈다. 장거리를 달리는 운전사에게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만 현장에는 제대로 쉴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 오이 씹으며 졸음 쫓아

11일 오후 6시경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경기 군포시를 오가는 광역버스 안. 운전사 김모 씨(54)는 준비해온 오이를 우걱우걱 씹더니 그래도 졸음을 물리치기가 어려운 듯 고개와 어깨를 이리저리 돌렸다.

“전화 통화를 하는 게 잠 깨는 데 가장 좋긴 하지만 승객들이 불안해하니까….”

김 씨가 이날 분당과 군포를 4차례 오가며 9시간 운전하는 동안 휴식시간은 점심 때 10분을 포함해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회차지인 군포 한세대 앞에 도착해 손님이 모두 내리자 김 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소변이 급했던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김 씨는 화장실을 포기하고 다시 분당 방면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김 씨는 “회차지 정류소에 따로 화장실이 없어 주변 주유소나 상가건물에 들어가 부탁을 해야 하는데 번거로워서 웬만하면 그냥 참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 부근에서 운행을 하던 한 버스운전사는 용변이 급한 나머지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유소 화장실에 갔다가 한 승객이 운전사를 구청에 신고해 사달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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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조)이 2015년 버스 운전사 28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운행하는 버스 종점과 회차지에 화장실이 없다”고 답한 운전사가 전체의 60%에 이른다. 주변에 상가건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마저 없으면 도로변에서 해결해야만 한다.

경기와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는 서울 도심을 경유한 뒤 다시 고속도로를 거쳐 경기 지역 차고지로 돌아오는 노선을 반복 운행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왕복 4시간 넘게 걸리지만 피곤하다고 도중에 버스를 세울 순 없다. 중간 회차지 역시 대부분 서울역, 강남역, 사당역 등 붐비는 도심이라 운전사들이 버스를 세우고 쉴 공간이 거의 없다. 2시간 운전 후 15분씩 쉬도록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규정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서울역에서 회차하는 광역버스 운전사 이모 씨는 “차고지에선 서둘러 나오기 바쁘고 회차지에선 조금만 버스를 주차하고 있어도 딱지를 떼이는 경우가 있어 휴식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직업병’을 앓는 운전사도 상당수다. 경기 평택시에서 버스 운전사로 10년째 일해온 박모 씨(41)는 다리에 하지정맥류가 생겨 2015년에 수술을 받았다. 박 씨는 “50, 60대인 동료 기사들은 방광염이나 전립샘에 문제가 있어 비뇨기과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식사를 할 때는 대충 국물에 후루룩 말아먹기 때문에 소화기 계통 질환도 많다”고 말했다. 자동차노조의 201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버스 운전사의 27.3%가 어깨와 무릎에 통증을, 23.5%는 요통과 허리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 정부, 전국 버스 실태조사 착수

국토교통부는 고속버스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 전국 버스운송업체 200여 곳을 대상으로 안전관리 실태 점검에 나선다고 11일 밝혔다. 기존 차량에 졸음운전 사고를 예방하는 ‘전방추돌 경고장치(AEBS)’ 장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AEBS 의무 장착은 올해 1월 9일 이후 신규 출시된 대형 승합차와 화물차에만 적용돼 왔다. 국토부는 지자체와 합동점검반을 꾸려 버스업체가 운전사의 최소 휴게시간을 보장하는지, 운전사의 질병, 피로, 음주 상태를 확인하는지, 운전사 휴게시설은 설치했는지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현행 여객사업법 개정안은 시외·고속·전세버스 운전사가 2시간 연속 운전하면 휴게소 등에서 15분 이상 쉬도록 규정하고 있다. 4시간 이상 운전하면 30분 이상 쉬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는 최대 90일 사업정지나 18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지만 졸음운전으로 인한 버스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7중 추돌사고를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대는 11일 오산교통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김 씨가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의심되는 만큼 사측이 휴식시간 보장 등 안전관리 규정을 준수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또 경찰은 사측이 차량을 불법개조하거나 시속 110km를 넘지 못하도록 한 속도제한장치를 제거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오산=최지선 aurinko@donga.com / 수원=신규진·정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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