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단비]아픔 이기려 아픔과 마주한 그 동네… 치유법은 엄정한 심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인천=김단비·사회부
인천=김단비·사회부
인천 초등생 살인범 김모 양(17·구속 기소)의 재판이 인천지법에서 열리는 날이면 30, 40대로 보이는 ‘엄마 부대’가 법정 방청석을 가득 메운다. “전화를 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김 양을 따라갔다가 참담하게 숨진 A 양(8)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엄마들이다. 그들은 “A 양과 A 양 어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엄마들은 12일 주민 3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김 양과 공범 박모 양(18·구속 기소)을 엄중히 처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비 내리는 거리에서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 서명을 받았다. 엄마들이 서명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부의 냉대였다. “나쁜 기억을 빨리 잊고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3월 29일 A 양이 살해당한 뒤 분노와 죄책감, 불안이 뒤섞이면서 나타난 혼란이다.

사건 이후 달라진 동네 모습에서 집단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조짐을 확인한 취재진은 보도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기획 의도와 달리 자칫 주민들의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취재진은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엄마들을 지켜보면서 보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명운동에 참여한 한 주민은 “사건 직후 심리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뒷짐만 지고 있으면 안전한 동네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만 사먹었다. 저를 돌볼 겨를은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한 엄마는 “엽기적 범행에 호기심을 갖거나 가해자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만 주민들의 피해 회복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취재진이 접촉한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주민들이 심리적 충격과 상처를 치유하려면 피해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첫 단추”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사건을 단지 한 건의 범죄가 아닌, 한 마을의 재난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이 지역 관할 구와 보건소는 A 양이 살았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심리상담용 부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1000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서 부스를 찾아온 사람은 16명에 그쳤다. 한 주민은 “상담을 받으러 관리사무소까지 갔는데 정신이상자처럼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치유를 돕기 위한 조치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방증이었다.

김 양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도 피해 회복과 치유의 관점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혹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김 양과 공범 박 양의 모습이 주민들의 심리적 충격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단란한 가정의 ‘보물 같은’ 막내딸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마을에 불신의 씨앗을 뿌린 죗값을 김 양과 박 양이 충분히 치르게 해 달라는 주민들의 애원이 외면 받아선 안 될 것이다.

취재진이 만난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이 동네를 사랑한다. 떠나고 싶지 않다”며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친구 엄마한테 달려가 마음 놓고 안기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엄마들의 애타는 호소가 가슴속 깊이 박혔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재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