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김변호사의 쉬운 법이야기]상속 사전포기? 불가능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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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병석에 누워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간병인이 필요했는데, 몸이 좋지 않아 그런지 짜증이 많아지고, 우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까다롭게 구는 이 남자를 견뎌내는 간병인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들 그만둬버립니다. 그런데 이번 간병인은 좀 다릅니다. 어떻게 짜증을 내도 화를 내지 않고, 정말 싹싹하게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환자 자신이 스스로를 돌봐도 이보다 더 정성스러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침내 이 남자는 병을 이겨내고,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날 정도로 회복됐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이 남자와 간병인 사이에는 사랑이 싹텄죠. 어찌 보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사실을 더하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게 되지요.

이 남자는 장성한 자녀들과 손자녀까지 둔 노인입니다. 간병인은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처자로 둘의 나이 차는 상당합니다. 이 남자는 재벌 총수로서 그야말로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와병 중이라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여전히 왕회장으로 군림하며 기업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재력이 상당한 이 남자에 비해 간병인은 천애 고아로 자랐고, 배움도 짧아 내세울 사회적 배경이랄 것이 전혀 없습니다. 둘의 사랑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참으로 많은 차이가 있고, 헤쳐 나갈 역경도 많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가장 크게 반대하는 것은 노인의 자녀들입니다. 자기 또래의 젊은 새어머니가 생기는 것이 불쾌한 감정적인 부분도 문제였지만 사실 자신들이 상속받을 재산이 적어진다는 현실적인 불안이 반대의 가장 큰 이유입니다. 민법 제1000조 및 제1003조에 따르면 피상속인(상속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배우자(남편이나 아내를 일컫는 말로 혼인신고를 갖춘 법률혼 배우자를 의미)는 직계비속(자기로부터 직선으로 내려간 후손을 일컫는 말로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을 말함)들과 공동상속인이 되고, 배우자 상속분(상속재산에 대한 승계비율)은 직계비속 상속분에 5할을 가산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민법 제1009조 제2항).

이들의 현실적인 걱정 앞에서 새어머니가 되겠다는 간병인은 재산에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면서 상속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상속 포기 각서를 써서 공증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간병인의 상속 포기 선언에 자녀들은 과연 안심할 수 있을까요?

민법은 상속을 포기할 수 있는 기간을 상속 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로 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1019조 제1항). 상속 포기는 이렇듯 일정 기간 내에만 가능하고, 가정법원에 신고하는 등 일정 절차와 방식을 거쳐야 그 효력이 인정됩니다. 따라서 상속이 개시되기도 전에 한 상속 포기 약정은 법이 정한 절차나 방식을 따른 것이 아니므로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간병인의 상속 포기 선언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진심일 수 있겠지만 사실 아무런 효력이 없는 허언인 것입니다. 그녀의 진심은 상속이 개시된 이후에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
#민법 제1000조 및 제1003조#상속포기#공동상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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