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 죽음을” 극우 인종주의에 휩싸인 폴란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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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서 6만명 횃불 집회
내무장관 “아름다운 광경” 두둔 물의

“유럽은 백인의 것이다.”

폴란드 독립기념일인 11일 수도 바르샤바에 모인 군중 6만여 명은 이렇게 외치며 횃불을 든 채 도로를 점거했다. 일부는 복면과 마스크를 두르거나, 영화 ‘베트맨’의 악당 조커 같은 분장으로 얼굴을 감췄다. 과거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도 ‘낙원’으로 여겼을 만큼 관용과 평등 의식이 높았던 폴란드의 심장에서 외국인을 향한 거친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12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벌어진 시위에 대해 “최근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극우집회”라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폴란드의 독립기념일은 오스트리아·독일·러시아에 의해 분할된 지 123년 만인 1918년 11월 11일 폴란드가 국가 지위 회복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 CNN은 “최근 수년간 폴란드에선 공식 국가 행사보다 극우파 집회가 주요 독립기념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대의 입에선 “조국의 적들에겐 죽음을” “순수한 혈통” “이슬람들의 홀로코스트(대학살)를 원한다” 등 인종주의적인 막말이 쏟아졌다. 한편에선 1930년대 폴란드의 극우 정치세력이었던 ‘팔란가(Falanga)’의 상징이 담긴 깃발 행렬이 이어졌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민족주의 세력이 싹트기 시작한 폴란드에서 극우파가 득세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5년 극우정당 ‘법과정의당(PiS)’의 집권이다. 이 정당은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에 대한 불안심리를 자극해 선거에 이용했다. 당시는 유럽의 난민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PiS는 이민자와 난민이 콜레라 같은 전염병을 퍼뜨리거나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며 ‘외국인 혐오’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폴란드가 독일·헝가리·체코·미국에 이어 5번째로 극우 활동가가 많은 국가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국영 TVP방송은 이날 극우 시위에 대해 “위대한 애국자들의 행진”이라고 극찬하며 “시위대는 폴란드를 사랑하는 보통의 애국 시민일 뿐 극단주의자는 없다”고 전했다.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내무장관도 “아름다운 광경”이라며 시위대를 두둔하듯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극우#인종주의#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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