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마크롱 ‘삐끗’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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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 논란 합참의장 퇴진 계기로 정치권-언론 “제왕적 리더십” 비난
60% 넘던 지지율, 50%대 초반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국방예산 삭감을 놓고 대통령과 대립했던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이 19일 “프랑스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지휘권을 더는 행사할 수 없게 됐음을 절감한다”며 ‘항의성’ 사임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 대통령의 방침에 반발해 물러난 것은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이다.

드빌리에 의장은 국방예산 8억5000만 유로(약 1조1000억 원) 삭감 계획에 대해 지난주 하원 국방위원회에 나와 “나를 엿먹이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면 그는 그만둬야 한다”고 경질을 시사했다.

따져보면 드빌리에 의장이 항명한 모양새지만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의 화살은 대통령에게 향하고 있다. 국방예산 삭감 과정에서 군을 다루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합참의장 항명 직후 군 수뇌부를 불러 “나는 당신들의 상관이다. 어떤 압력도, 조언도 필요하지 않다”고 윽박지른 것이 큰 반감을 불렀다.

마크롱 대통령의 ‘제왕적 리더십’에 쌓여가던 불만이 폭발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우파 공화당 발레리 부아예 의원은 “대통령의 거만함이 프랑스를 보좌하는 양질의 인물들마저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60%를 훌쩍 넘던 대통령의 지지율도 어느새 50%대 초반까지 내려왔다. “주피터(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왕 제우스)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며 대통령을 비판한 르피가로는 “특히 저소득층은 그를 거만하고 권위주의적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총선 승리로 국회까지 장악해 권력 독식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루브르궁, 베르사유궁 등 궁전을 즐겨 찾자 ‘제왕’을 꿈꾸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상·하원 의원들을 베르사유궁에 모아 놓고 90분 동안 연설하면서 “의원 3분의 1을 줄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9월까지 의회를 거치지 않고 노동개혁을 마무리하겠다고 밀어붙이는 모습들에 불만이 쌓였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을 지켜보던 반대파들도 슬슬 들고일어나고 있다. 특히 이번 감축 결정으로 2022년까지 130억 유로(약 16조7700억 원)의 지방 정부 예산이 줄어들면서 지방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있고, 대학에 투입될 예정이었던 3억3000만 유로(약 4257억 원)를 삭감하자 대학교수 노조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마크롱#지지율#합참의장#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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