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위태로운 ‘유럽 공동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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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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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국제부 차장
구자룡 국제부 차장
다행히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대 법안에 찬성하기로 12일 입장을 번복했지만 슬로바키아 의회가 11일 법안을 부결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였다. ‘발등의 불’인 재정위기 극복과 유로공동체 유지에 큰 우려를 던졌으며, 회원국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몽니’라는 비판마저 일었다. 2009년 1월 16번째로 유로존에 가입한 슬로바키아는 자신들의 내부 정치적인 이유로 ‘유로존 화재’를 외면하려 했다. EFSF 분담금 등의 기준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지분이 0.32%에 불과한 슬로바키아가 유럽 공동체 전체를 위협했던 것이다.

이번 슬로바키아의 행보를 계기로 유로 단일통화 체제가 회원국들에 ‘모럴 해저드’를 부추겼다는 사실이 새삼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는 1999년 1월 1일 처음 11개국으로 유로화가 출범할 당시 재정 불건전성 등을 이유로 탈락됐다. 그 뒤 2년 뒤인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자 오트마어 이싱 전 ECB 총재는 “자격도 안 되는데 (다른 나라를) 속여서 가입했다”고 주장했다.

유로존 가입 조건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3% 미만인데 1%라고 주장했다는 것. 지난해 이 나라 GDP 대비 적자비율은 10.3%였다. 지금 그리스 등 유로존 내 일부 국가는 ‘국민이 생산에 비해 흥청망청 소비했으며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비난에 앞장서는 독일 등도 이들 국가가 분수에 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방조하고 나아가 이를 이용해 성장과 번영을 구가한 측면이 없지 않다. 독일의 수출 중 유럽 비중이 70%가 넘는다. 독일이 유로화 구제에 적극 나서려고 하는 데는 경제 대국으로서의 책임뿐만이 아니라 자국 이해와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시사주간 타임은 최근 ‘유럽의 종말’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공동의 화폐를 사용하다 보니 일부 국가가 생산력과 경제력에 맞지 않은 화폐가치를 누려 ECB로부터 마구 돈을 빌려 쓸 수 있었다”며 “유럽이 카지노를 닮아갔다”고 비난했다.

유로화 출범 당시 유럽은 ‘유럽 합중국’의 첫 출발이라고 한껏 들떴다. 하지만 출범 12년을 맞아 경제의 규모와 실력이 서로 다른 국가를 무리하게 묶었던 부작용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가 암울하다 보니 과거 악몽까지 되새기는 지경이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는 ‘유로가 없으면 유럽은 다시 전쟁으로 돌아가는가?’라고 물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는 유럽에서 민족주의와 전쟁을 제거하는 마지막 조치처럼 묘사됐다”고 회고했다. 다시 말하면 유로가 붕괴하면 유럽 내에서 (무역이든 전쟁이든) 분쟁 요소들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과연 유럽 통합이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적 꿈이었는지, 통합은 고사하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이 돼 지구촌을 흔들지, 아니면 비온 뒤에 단단해지는 유럽으로 거듭날지 세계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구자룡 국제부 차장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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