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佛정치 빅뱅’ 서막… “공화-사회당 악몽 이제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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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총선이 기성정당 운명 갈라

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 안에 들지 못해 1958년 5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결선투표 진출이 좌절된 기성 양대 정당 공화당과 사회당의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24일 일간 르몽드는 “두 정당의 존폐 여부가 당장 50일 뒤인 6월 총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결선투표 탈락도 충격이지만 하원의원 577석의 주인을 가리는 6·11총선에서 대선 때보다 더 큰 정치 빅뱅이 일어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에서 사회당은 280석, 공화당은 194석을 얻어 전체 의석수의 82%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1차 투표에서 두 당이 얻은 득표율은 26.4%에 불과했다.

르펜
5년 전 총선에서 극좌 장뤼크 멜랑숑과 극우 마린 르펜이 소속된 정당은 577석 중 각각 10석과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전체의 2% 수준으로 미미한 존재였다. 1차 투표 1위에 오른 에마뉘엘 마크롱이 소속된 중도 성향 신당 ‘앙마르슈(전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들 세 후보의 1차 투표 지지율 합계는 무려 64.9%에 이른다.

대통령 선출(5월 7일 결선투표) 한 달 뒤 열리는 총선은 주로 집권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2012년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당선 직후 열린 총선에서 사회당은 2007년보다 94석이 늘어난 280석으로 압승을 거뒀다. 2007년에도 우파 대중운동연합(UMP·공화당의 전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열린 총선에서 UMP가 압승을 거뒀다. 전례대로라면 결선투표에 진출한 마크롱의 앙마르슈 또는 르펜의 FN이 대약진할 걸로 예상된다. 기성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의 의석수는 큰 폭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마크롱
마크롱은 이번 대선 캠페인 기간 ‘소속 정당에 의원 한 명 없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대통령이 되면 유권자들이 이성적으로 의회 다수를 줄 것”이라고 반박해 왔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 여당이 대선 직후에 열리는 총선에서 압승하는 공식을 믿는다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공화당과 사회당은 대선 패배 다음 날인 24일 긴급 지도부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사회당은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을 지지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반면 공화당은 “(지지층에게) 결선 투표에서 르펜을 찍으라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총선을 준비한다”는 애매모호한 메시지를 밝혔다. 대선 후보였던 프랑수아 피용과 알랭 쥐페 보르도 시장 등 당내 온건파는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자고 주장하지만 당내 최대 지분을 가진 사르코지 전 대통령 측이 “마크롱을 지지할 경우 총선에서 힘들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정권 당시 주택부 장관을 지낸 크리스틴 부탱은 이날 “마크롱은 페스트나 콜레라 같은 존재다. 차라리 르펜을 찍겠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1969년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사회당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사회당 경선 결선에 올랐던 마뉘엘 발스 전 총리는 24일 “사회당 해체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고 위기감을 표현했다. 사회당이 자유주의 진보 진영을 흡수하고 있는 중도 마크롱과 극좌 멜랑숑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5월 7일 결선투표에서 마크롱과 르펜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6월 총선 직후 대대적인 정계 개편은 불가피하다. 마크롱이 대통령이 될 경우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창당됐던 2004년 열린우리당과 비슷한 정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마크롱이 경제산업부 장관을 지낸 사회당에서 이탈자가 다수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마크롱은 기성 정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기 위해 앙마르슈를 정당이 아닌 정치운동 결사체로 계속 부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총선용 정당으로 변모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앙마르슈가 진행 중인 총선 후보 공모에 지금까지 1만5000여 명이 신청했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마크롱은 6월 총선에서 후보의 절반을 여성과 시민단체 출신으로 공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소선거구제의 특성상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들이 닦아 놓은 지역 기반이 탄탄한 데다 총선 역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1, 2위가 겨루는 결선투표제가 적용돼 신생 정당이 바람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파리정치대 토마 게놀레 교수는 “만약 공화당이 리더십 문제를 해결해 반격에 나선다면 마크롱은 총선 이후 공화당과 공동정부를 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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