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4연임 저지나선 ‘독일의 샌더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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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딥포커스]사민당 새 대표로 선출된 슐츠


유럽의 눈은 요즘 독일 서부 프랑스 국경의 작은 도시 ‘자를란트’로 쏠려 있다. 26일 이곳에서 열리는 주의회 선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톨릭 보수 성향의 서독 지역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기독민주당(CDU)의 텃밭으로 꼽혔던 이곳에서 이상 징후가 발생하고 있다. 1월 중순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CDU(38%)에 10%포인트 이상 뒤지던 사회민주당(SPD·26%)의 지지율이 두 달 사이 급속도로 올라 지난주 1%포인트(CDU 35%, SPD 34%) 차까지 추격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아주 가까운 주정부 총리인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조차 인정한 ‘슐츠 효과’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는 “마르틴 슐츠의 감정적 호소가 지금까지는 성공했다”며 “이곳에서 SPD가 이긴다면 독일 정치 판도 변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회 의장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1월부터 계속된 ‘슐츠 효과’는 9월 메르켈의 4번째 연임을 막을 정도로 강력하다. 메르켈과 다른 친근한 리더십, 서민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경제 정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국내 반감 등 세 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SPD는 CDU와 여론조사에서 1, 2%포인트 차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슐츠는 19일 대의원 100% 만장일치로 SPD 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1955년 네덜란드, 벨기에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인란트 지역에서 하위직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 밑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축구선수로 활동한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도서판매 직업교육을 받은 뒤 누나와 서점을 열었다. 1975년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한때 좌절감에 알코올의존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엘리트 정치인과 다른 이색 경력을 숨기지 않는 점에서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메르켈과 대비된다. 19일 SPD 전당대회 연설에서 “알코올에 중독됐을 당시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잃고 항로를 이탈하기 직전이었다”며 “그때 고향의 SPD 청년 조직(Jusos)에서 활동하면서 인생의 두 번째 기회가 열렸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독일의 버니 샌더스’로 불리며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1984년 20대에 처음으로 고향인 뷔르젤렌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뒤 32세 나이에 뷔르젤렌 시장으로 당선됐다. 1994년부터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고 2014년부터 3년간 유럽의회 의장을 지냈다.

그는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독일의 경제정책에 과감한 문제 제기를 하며 메르켈을 압박하고 있다. 실업수당 인상, 은퇴연금 인상, 노동자 기업 참여 권한 강화 등 SPD 본연의 좌파 정체성을 찾겠다는 그의 공약은 메르켈의 긴축 정책에 피로감을 느끼는 서민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독일 내에 커지고 있는 반트럼프 정서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직접적 비판을 자제하는 메르켈과 달리 유럽의회 의장 때부터 보호주의를 내세운 트럼프를 비판해 온 그는 19일에도 “여성 혐오증의 반민주적인 인종주의자”라고 맹비난했다.

다만 메르켈보다 더 우호적인 난민 정서를 갖고 있어 안보와 이민 문제에 민감해지고 있는 독일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마르틴 슐츠#독일#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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