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 해상 무력충돌 일촉즉발… ‘동북아 혼돈의 시대’ 다시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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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동북아]<上> 100년 전의 그림자
中 센카쿠 해상 ‘船海전술’… 日 제국주의로 힘의 균형 무너진 20세기초 연상
주요국 정권교체 맞물리며 민족주의까지 기승

17일 중국 저장(浙江) 성 샹산(象山) 현 스푸(石浦) 항 앞바다는 오성홍기를 단 어선 2000여 척으로 넘쳐났다. 관영 신화통신은 저장 성과 푸젠(福建) 성 등 연안 지역의 어선 1만여 척이 출어 채비를 마쳤다고 전했다. 이들 어선은 태풍 ‘산바’가 지나가면 일제히 동중국해를 향해 돌진할 예정이다.

동중국해는 중국과 일본이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가 있는 곳이다. 16일 센카쿠 열도에서 전투기와 전투함정을 동원한 대규모 모의전투훈련을 벌인 중국은 이제 어선들을 동원한 ‘선해(船海)전술’로 일본을 코너로 밀어붙일 태세다. 18일은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이 시작된 만주사변 81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이에 일본 해상보안청은 일단 경고방송을 통해 중국 어선들이 일본 영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하지만 중국 어선이 영해에 공공연히 들어오고 센카쿠에 상륙까지 시도한다면 일본도 강경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어 이 과정에서 양국 간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이렇듯 중국과 일본 간 영토분쟁이 무력충돌 직전의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동북아시아 국제질서가 19세기 말∼20세기 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주요국들이 잇달아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크게 불안해진 동북아 정세가 약육강식의 각축전으로 혼란에 휩싸였던 그때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100년 전 동북아에선 중화제국의 패권 상실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가 급부상하면서 엄청난 소용돌이를 불러왔다. 이제 21세기 동북아에선 새롭게 패권국가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본 미국이 중국과 충돌하면서 국제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주요국의 정권교체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극심한 민족주의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동북아에서 기존 국가 간 힘의 분포가 급속히 바뀌는 ‘세력전이(power transition)’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는 “과거 냉전구도에서 억제돼온 주권과 영토 문제들이 부각되면서 ‘동북아 혼돈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 1894년 급성장 日, 대륙향해 포격… 2012년 부활한 中, 충돌불사 반격 ▼



○ 100년 전과 입지 뒤바뀐 일본과 중국


1894년 7월 25일 새벽. 어슴푸레한 서해안 아산 인근의 풍도 앞바다에서 갑자기 수십 발의 속사포가 발사됐다. 청나라 북양함대가 일본 함대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한 것이었다. 조선 지배를 놓고 다툼을 벌이던 청나라와 일본 간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던 북양함대는 손 쓸 틈도 없이 격침됐고 수천 명의 청군 장병은 익사하거나 일본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후 9개월간 계속된 청일전쟁은 청나라의 완패로 끝났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이뤄낸 근대화와 산업화를 바탕으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축적한 상태였다. 이렇게 축적된 힘은 거대한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넘어 아시아를 제패하려는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으로 나타났다.

그랬던 일본은 현재 만성화된 경기침체와 잦은 정권교체, 사회적 무력감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쇠락한 국력과 외교력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주변국을 자극하는 무리한 대외정책이 잇따르는 형국이다. 일본은 6월 핵무장과 집단적 자위권을 통한 군사력 확대를 시도하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반면 중국은 100여 년 전 아편전쟁의 후유증과 서구 열강의 수탈에 시달리던 과거를 거침없는 기세로 설욕하고 있다.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며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중국은 이미 경제규모로 일본을 추월한 데 이어 앞으로 10∼20년이면 미국과 맞먹는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군사력 증강 속도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특히 중국은 영토 및 주권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하고 거친 태도를 보이며 주변국과의 갈등을 불사하고 있다. 정부 외교 당국자는 “중국은 자국의 ‘핵심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며 “센카쿠 열도와 남중국해 같은 영토분쟁에서 중국이 보여준 대응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 동북아를 무대로 한 미중 간 ‘G2 대결’

이런 중-일 간 대결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수는 이른바 ‘주요 2개국(G2)’ 가운데 하나인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해 ‘동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선언한 이후 동맹국인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와 호주, 인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까지 끌어들이며 ‘중국 포위’를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미국은 결과적으로 중국이 얽혀 있는 아시아 지역의 민감한 영토분쟁에까지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과 주변국이 대치하는 남중국해에서 보란 듯이 필리핀과 연합군사작전을 펼치는가 하면 센카쿠 열도와 관련해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나서 “센카쿠 열도는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범위 안에 있다”며 공개적으로 일본을 편들고 있다.

과거 대륙에서 해양으로의 확장을 노리며 이 지역에서 러일전쟁을 벌였던 러시아도 앞으로 ‘신(新)동진정책’에 불을 붙일 태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5월 재집권하자마자 극동개발부를 설치해 동부 개발에 나섰다.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 것도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움직임이다.

여기에 체제 안착에 사활을 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추가 도발 가능성 등 다른 요인들까지 얹히면서 동북아의 불안정성은 어느 때보다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영토문제 등을 둘러싼 분쟁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흥규 교수는 “현재 동북아 지형을 흔드는 문제에는 미국까지 개입돼 있고 국제체제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됐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강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도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이 바뀌면서 기존 구조가 무너지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분쟁의 관리에도 실패한 형국”이라며 “현 상황을 대체할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기도 어려운 과도기여서 소규모 분쟁은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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