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행복 모르는 인생, 지루하지 않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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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동안 여수서 한센인 진료 봉사… ‘석천나눔상’ 받는 스탠리 토플 박사

평생을 한센병 환자 치료에 헌신한 아네 마리 토플 여사(왼쪽)와 스탠리 토플 박사 부부가 18일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열린 본보와의 인터뷰 이후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22년간 한국 ‘애양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했던 스탠리 토플 박사는 ‘석천나눔상’ 1회 수상자로 선정돼 19일에 열리는 시상식 참석차 최근 방한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평생을 한센병 환자 치료에 헌신한 아네 마리 토플 여사(왼쪽)와 스탠리 토플 박사 부부가 18일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열린 본보와의 인터뷰 이후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22년간 한국 ‘애양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했던 스탠리 토플 박사는 ‘석천나눔상’ 1회 수상자로 선정돼 19일에 열리는 시상식 참석차 최근 방한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미국에서 정형외과 의사로 안정되게 사는 인생은 좀 지루(boring)하지 않나요.”

평생을 한국과 아프리카 등에서 한센병과 소아마비,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헌신한 스탠리 토플 박사(86)에게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험난한 길을 걸었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이렇게 답했다.

토플 박사는 국적을 초월한 헌신과 인류애를 인정받아 대웅제약이 만든 공익재단 석천나눔재단(이사장 이종욱)이 주관하는 ‘석천나눔상’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19일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2년 만에 부인 아네 마리 토플 여사(87)와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토플 박사는 1957년 미국 에머리대 의대를 졸업하고 1959년 27세의 나이로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왔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에 그가 찾은 곳은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 선교사들이 전남 여수에 설립한 ‘애양원(현 여수애양병원)’이었다. 미국 시카고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토플 박사는 대학 시절 한센병의 권위자이자 선교사인 은사를 만나 당시 열악했던 한국 한센병 환자들의 현실을 전해 듣고 의료 선교를 결심했다.

토플 박사는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2년간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한센병, 소아마비 환자들을 치료했다. 1960년에는 노르웨이에서 의료 선교를 위해 한국에 온 소아과 전문의 마리 여사와 결혼해 네 딸을 한국에서 기르며 함께 의료 선교를 해나갔다. 네 딸 중 한 명은 부모의 뒤를 이어 의대로 진학해 북한 등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남편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마리 여사는 당시를 회상했다. “병원에 수도, 전기 시설도 없었고 난방이 되지 않아 석탄 난로를 사용했어요. 수술실도 천장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열악했지만 함께 지내던 한센병 환자들과 의료 봉사자들이 너무나 따뜻하고 좋아서 애양원을 떠날 수 없었지요.”

토플 박사는 1960, 70년대 애양원 원장을 지내며 현대식 병원 건물을 세우고 이동진료반을 도입하는 등 애양원의 발전을 이뤄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과 홍콩 등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한 새로운 수술법을 배워 와 환자들을 치료했다. 미국 장로교 병원에서 접이침대를 얻어와 당시까지 없었던 입원실을 설치해 환자들이 병원에서 계속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병원에 엑스레이 같은 의료 장비들이 도입되면서 환자들의 치료 환경이 개선되는 걸 지켜보는 것은 매우 기쁘면서도 설레는 일이지요. 병원과 함께 한국이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죠.”

토플 박사의 뒤를 이어 애양원 11대 원장을 지낸 유경운 박사는 “토플 박사가 이제 한국에는 한센병 환자를 도울 의사가 많으니 한국보다 더 열악한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해 당시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토플 박사 부부는 몇 년 전까지 케냐, 코스타리카,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콩고 등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해왔다. 90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에 이제는 현지 의료 봉사는 하지 않지만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자들이 환자의 사진을 찍어서 e메일로 보내면 어떤 치료가 좋을지 조언해 주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돈이 필요한가요.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죠. 본인한테 이익이 될 것만을 추구하는 인생보다 주는 것에서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늘었으면 합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여수 한센인 진료 봉사#석천나눔상#스탠리 토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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