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주성원]93세 ‘아프리카 김일성’의 말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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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1940년)’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호소하는 주인공의 연설로 끝난다. 아돌프 히틀러를 닮은 제스처를 하며 되레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 역설적인 장면은 탁월한 연설로 국민을 사로잡은 독일의 독재자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많은 독재자처럼 히틀러도 처음에는 대중의 인기를 업고 집권했다.

▷15일 군부 쿠데타로 37년 권좌에서 쫓겨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93)도 1980년 짐바브웨 독립에 기여한 ‘독립 영웅’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해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총리가 됐지만 집권하자 독재자로 돌변했다. 1987년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임기 6년 대통령에 오른 뒤 폭정으로 현존 세계 최장기 독재자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41년 연하의 아내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무가베는 ‘아프리카 김일성’으로 불릴 만큼 북한과 인연이 깊다. 독립운동 때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은 그는 1980년 방북해 김일성의 ‘유일 독재’와 ‘우상화 정책’을 배웠다.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자신의 동상을 세우며 김일성 따라 하기에 나섰다. 1994년 김일성이 죽자 추모위원회를 꾸렸을 정도로 김일성을 숭배했다. 김정일에게는 2010년 짐바브웨의 야생동물 한 쌍씩을 모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선물하려다 국제적인 비난에 포기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김정은에게 500만 달러를 주고 동상 제작을 의뢰했다. 나라 경제를 파탄내면서도 통치자 일가는 잘 먹고 잘사는 것도 짐바브웨와 북한의 공통점이다.

▷고대 공화정 로마는 비상사태가 오면 6개월에서 1년 임기의 ‘딕타토르(독재관·獨裁官)’를 임명해 국가의 전권을 맡겼다. 영어 독재자(dictator)의 어원이다. 카이사르는 ‘사태를 해결하면 물러난다’는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종신 독재관이 됐다가 암살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재의 말로는 비극이다. 북쪽의 3대를 이어온 독재의 끝도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
#아프리카 김일성#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독재의 말로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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