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래퍼 러마, 퓰리처상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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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영합… 소외 음악인 격려하는 취지 잃어”
“흑인의 삶 표현… 고급-저급 예술 고정관념 깨”

힙합 래퍼 켄드릭 러마(31·사진)의 16일 퓰리처상 음악 부문 깜짝 수상 소식이 미국 음악계에 ‘적절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지 언론은 “2년 전 포크 뮤지션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논란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상자 명단이 발표된 직후에는 75년 만에 처음으로 클래식과 재즈가 아닌 장르가 선정됐다는 점에 관심이 쏠렸지만, 음악계 관계자들은 그보다 ‘이미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음악인에게 미국 언론계 최고 영예의 상을 주는 것이 과연 타당했는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2011년 아이튠스 독립앨범 ‘Section.80’으로 인기를 얻은 뒤 줄기차게 인종차별 등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하는 음악을 발표해온 흑인 래퍼의 퓰리처상 수상을 계기로 음악계의 보수적 배타성에 대한 갑론을박도 이어지고 있다.

대중문화전문지 롤링스톤은 “이미 12개의 그래미상을 받고 2015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바 있는 러마의 퓰리처 수상은 당연하다”며 “흑인 사회의 높은 영아 사망률에 주목해온 그의 가사는 어떤 뉴스 기사보다도 강력한 사회 비판 메시지를 전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클래식음악 에디터인 재커리 울프는 대중음악 에디터 존 패럴리스와 진행한 17일자 지면 토론에서 “러마의 퓰리처 수상은 주류 시장에서 소외된 상황을 버텨내며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음악인에게 한 줄기 빛을 주던 오랜 취지를 거스르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퓰리처상 수상이 음악 전문학교 교수직에 지원할 때 좋은 경력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하는 백인 남성들에게 당연한 듯 상을 주던 오랜 관행을 깨고 여성과 유색인 수상자를 내고 있는 최근 퓰리처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옹호론도 만만찮다. 지난해 퓰리처상 음악 부문 수상자는 인신매매 범죄를 다룬 오페라 ‘천사의 뼈’를 작곡한 중국계 여성 작곡가 두윈(杜韻)이었다.

워싱턴포스트 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앨리사 로젠버그는 18일자 기고문에서 “클래식 음악인들은 ‘대중음악이 배제됐던 영역을 잃게 됐다’는 불안감 때문에 러마의 퓰리처 수상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클래식 음악계의 노쇠한 기득권 백인 남성들이 ‘퓰리처가 대중에 영합해 힙합 스타에게 상을 줬다’며 여론을 오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1943년 음악 부문 수상자를 선정하기 시작한 이후 지난해까지 클래식 음악인 외에 퓰리처상을 받은 인물은 재즈 뮤지션 윈턴 마살리스(1997년)와 오넷 콜먼(2007년) 등 2명뿐이었다. 여성 수상자는 두윈을 포함해 7명에 불과하다. 로젠버그는 “퓰리처상 위원회는 러마에게 상을 줌으로써 기득권이 제한적으로 대물림되는 음악계의 현실을 드러냈다”며 “경제적 배경을 갖춰야만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음악계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사주간 뉴요커는 “러마의 퓰리처상 수상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에 대한 케케묵은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며 “흑인 래퍼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는 퓰리처상 음악 부문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들이 상의 적절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모순”이라고 논평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스타 래퍼 러마#퓰리처상 논란#대중#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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