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설명도 자막도 없이… SNS달군 여행 콘텐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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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새 팔로어 171만명… 페북 여행부문 페이지 1위 ‘여행에 미치다’

작년 11월 18일, 샤워 중인 남자의 발을 보여주는 야릇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3분짜리 동영상이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궜다. ‘세 훈남의 홍콩 여행기(3 guys trip in Hongkong)’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은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무려 365만 번이나 조회됐다. 10만 명이 ‘좋아요’를 눌러 팬임을 인증했으며 댓글만 6만8000여 개가 달렸다.

페이스북 페이지 ‘여행에 미치다’(이하 여미)가 홍콩 관광청과 제휴해 만든 이 동영상은 여미의 존재감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세 훈남 시리즈가 인기를 모으면서 여미 페이지의 팬은 150만 명을 넘어섰다. 8월 11일 현재 여미의 팔로어 수는 171만 명으로 페이스북 여행 콘텐츠 페이지 중 1위를 기록했다.

여미가 페이스북의 여행 콘텐츠 브랜드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자 국내외 정부기관과 기업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수단으로 여미를 찾기 시작했다.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여미에 콘텐츠 제작·관리·배포를 전적으로 맡기기로 한 것. 광고대행사나 전문 프로덕션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직접 만드느니, 여미 플랫폼을 활용하는 게 훨씬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미는 최근까지 120여 개 회사·정부기관과 160여 개 콘텐츠 제휴를 진행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5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조준기 대표(29)를 포함한 운영진 6명이 모두 20대라는 점도 놀랍다. 여미가 이처럼 많은 팬을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30호에 실린 ‘여행에 미치다’의 SNS 브랜딩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 외부의 영향력 행사자 영입

조준기 대표가 2014년 여미 페이지를 처음 개설했을 때만 해도 팬은 30여 명에 불과했다. 조 대표 혼자 카드뉴스를 만들어 올려봤지만 팬 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6개월간 ‘제로 성장’으로 고전하던 여미가 여행 전문 페이지로 최초의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아마추어 여행가 안시내 씨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다.

당시 페이스북에는 소수의 아마추어 여행가들이 특별한 여행기를 올리면서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이들은 기존 대형 여행사, 패키지 중심의 획일적인 주류 여행 문화에 도전하며 일종의 하위문화를 형성했다. 특히 안 씨는 당시 22세의 어린 나이에 단돈 350만 원으로 141일간 자유여행을 한 여행기를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주목받았다. 오프라인 여행가 모임에서 안 씨를 알게 된 조 대표는 안 씨의 여행기를 가공해 여미 페이지에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당시 안 씨의 여행기는 젊은 여성이 혼자, 더군다나 최소의 돈으로 긴 시간 세계 여행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하위문화 집단에 큰 충격을 줬다. 155cm의 작은 체구와 앳된 외모의 안 씨가 본인 키만 한 배낭을 메고 힘겨워하는 여행 사진이 여미 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안 씨 이야기가 다시 화제가 됐다. 일부 여행가의 전유물이었던 자유여행 하위문화가 여미를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 씨 덕분에 여미의 팬 수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 창작자 커뮤니티의 힘

여미는 팔로어가 어느 정도 모이자 적극적으로 창작자들만을 위한 별도의 폐쇄형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경쟁적으로 여행기를 올려 여미 문화를 구성하고,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여미는 창작자들이 제작하거나 제작에 참여한 콘텐츠를 회원 이름과 함께 누구나 볼 수 있는 여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했다. 여미가 인정한 콘텐츠 제작자라는 일종의 인증이다. 또 이들이 제공한 콘텐츠에 대한 보상으로 여미 로고가 박힌 스티커, 여권지갑, 배지 같은 기념품을 제공해 소속감을 부여했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면서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해줄 콘텐츠 창작자 집단을 체계적으로 관리한 것이다.

여미 그룹원은 1인 창작자로서 경쟁적으로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고, 여미만의 집단적인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여미는 다양한 창작자가 여행 관련 영감을 주고받고, 콘텐츠를 공개해 심사받게 하는 역할까지 하게 됐다. 부경대 경영학과 4학년인 이승아 씨는 여미에 올린 여행기를 ‘쫄보의 여행’이란 책으로 펴내 여미 출신 제1호 여행 작가로 데뷔했다. 현재 여미 그룹에는 24만 명의 콘텐츠 창작자가 자유롭게 여행 관련 정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여미에 하루 평균 2, 3개씩 새로운 콘텐츠가 꾸준히 올라 오는 비결도 바로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다.

○ 통념 깨뜨린 자발적 아마추어리즘

여미 콘텐츠가 특히 페이스북 주이용 연령인 10, 20대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여미는 10, 20대 예비 여행자들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감정을 자극했다. 홍콩관광청과 제휴해 만든 세 훈남 홍콩 동영상은 정작 촬영 배경이 된 홍콩에 대해 어떤 정보도 자막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홍콩을 여행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데 성공했다.

세 훈남 동영상에 나타난 ‘여미스러움’을 조준기 대표는 ‘자발적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정의했다. 조 대표는 “스토리 진행, 화면 구성 같은 구체적인 콘티는 대부분 촬영 현장에서 결정한다”며 “현장에서 배우들이 느낀 감정, 그 순간을 캐치해낸 자연스러운 영상에 팬들이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미는 전문가주의를 의도적으로 배격한다고 했다. 실제로 친구랑 여행 가서 찍은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러우면서도 개성 있는 영상을 연출해 누구나 여미처럼 여행하고 또 여행기를 올릴 수 있다고 어필한다. 게시물 댓글에는 여행 정보뿐만 아니라 동영상을 찍는 데 사용한 카메라 기종과 영상 편집에 사용한 프로그램까지 안내한다.

여미 동영상은 광고주를 노출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광고주가 있는 동영상의 경우 게시물에 ‘By 여행에 미치다×기업명’이란 짤막한 문구로 제휴 회사가 어디인지 밝힌다. 팬들이 보는 동영상에는 광고주를 많아야 한두 번 스치듯이 노출시킬 뿐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업과 콘텐츠 제휴를 맺지만 해당 기업의 브랜드를 철저히 ‘여미식’으로 표현해 배포한다는 게 원칙이다.

여미는 현재 인력을 보강하는 한편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여미 문화에 공감하는 중소기업과 여행 상품을 공동 제작하는 방식의 코브랜딩 작업도 확대할 생각이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미는 다양한 기업과 제휴를 맺으면서도 콘텐츠를 여미화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앞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면 여미 브랜드를 구성하는 애드버킷(advocate·지지자)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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