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향 가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6일 00시 00분


코멘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한 20대 청년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고향에 내려가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거듭된 낙방에 따른 좌절감에다 고향집에 내려갈 면목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취업절벽 앞에서 기성세대를 원망하며 ‘헬조선’을 저주하는 숱한 청년들의 자화상 같아 가슴 아프다.

청년이 모험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이 청년의 죽음을 알린 공시생 사이트에는 “자살을 미화할 수는 없지만 심정만은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공시에 매달리다 다른 기회를 놓치고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공시낭인’은 묵과할 수 없는 사회문제다. 공시생이 정부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공무원학원 밀집 지역인 동작구 마음건강센터가 2014∼15년 수험생과 고시원생의 정신건강을 검진한 결과 70%가 우울증 및 자살 위험군이었다.

공시 쏠림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취업준비생 62만8000명 가운데 40.9%인 25만7000명이 공시 준비를 한다. 중앙과 지방자치단체를 합쳐서 한 해 채용인원은 2만2000명에 불과한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공부하면 합격할 것 같은 기분에 재수 삼수 심지어 10수까지 하는 청년들이 나온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공시에 다걸기하는 개인의 시간적 경제적 손실도 크지만 국가적으로도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청년들로부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소리가 나오는 나라에 희망은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어제 청년기본법 제정과 중소기업임금보전, 임금체불과 열정페이 근절 등의 청년공약을 발표했고 이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공공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공약했다. 이런 정책도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민간이든 공공이든 세금으로 만들어 낸 일자리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 사라지는 신기루다. 궁극적으로 청년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나올 곳은 기업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구조 혁신, 투자 유치를 위한 규제 혁파 등 정공법이 아쉽다. 대선 후보들은 아픈 청년에게 세금으로 진통제만 놔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미래에 희망이 보이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공시생의 비극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공무원시험#공시 쏠림현상#이생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