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수주낙관-미진한 자구노력… 사태 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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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에 2조9000억 추가 지원

“말 바꾸기 맞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3일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비난받고 책임이 있다면 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 위원장은 “조선업의 장기 시황 부진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고, 대우조선의 위험 요인을 보수적으로 판단해 대응하지 못한 부족함이 있었다”라고도 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신규 자금 지원을 검토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였다. 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자금 지원을) 준비했지만 미리 말할 수 없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수주는 목표의 10분의 1에 그쳤고, 올해 상반기(1∼6월) 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1조 원 규모의 소난골 드릴십 인도는 성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채권단은 1년 5개월 만에 신규 자금 2조9000억 원을 대우조선에 다시 붓기로 했다. 4월 중순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 경질될 회사채 보유자의 손실 분담 여부에 대우조선의 운명이 달려 있다.

○ 자구 노력 미진해 또 손 벌려

금융당국이 1년 5개월 만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수주 전망 △취약한 리스크 대비 △분식회계 여파 △미진한 자구 노력 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뒤얽힌 탓이다.

2015년 10월 채권단은 신규 자금을 지원하면서 대우조선의 지난해 수주 전망을 115억 달러로 잡았다. 그러나 실제 지난해 수주량은 목표의 13%인 15억4000만 달러에 그쳤다. 당시 국제유가가 최저점인 상황에서 소난골 리스크를 감안하지 못했다. 여기에다 5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도 드러났다. 대우조선은 현재까지 자구 목표(2020년까지 5조3000억 원)의 34%(1조8000억 원)밖에 이행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2조8000억 원의 자본을 채워주는 식으로 빚을 줄여줬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실적이 나빠지면서 자본은 5308억 원으로 쪼그라들고 부채비율은 2732%로 치솟았다. 4월에 4400억 원 회사채를 갚고 나면 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P플랜 가면 3조 원 계약 취소 확실시

1년 5개월 전으로 시곗바늘을 돌린 것처럼 ‘빅배스(부실을 한 번에 털어내는 것)-대규모 자금 지원’의 패턴이 되풀이됐다. 2015년 상반기(1∼6월)엔 감춰졌던 부실이 드러나면서 당기순손실 2조4600억 원을 냈다. 이후 4조2000억 원이 투입됐다. 지난해 말엔 2조7100억 원 당기순손실을 내 추가 자금 지원이 불가피해졌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대우조선이 도산하면 국가적으로 볼 수 있는 피해가 59조 원이지만, 회사가 2년간 유지되면 27조 원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며 이번 조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조건부 지원 방안의 전제는 채권자와 노조의 손실 분담이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은 4월 중순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채무 재조정을 시도한다. 은행권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수은은 1.1%포인트 △산은은 0.3%포인트 △시중은행은 0.01∼0.2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대우조선은 내년 말까지 최대 부족자금 5조1000억 원을 해소하고, 부채비율을 지난해 2732%에서 2021년 257%로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합의에 실패해 ‘P플랜’에 돌입하면 3조 원 규모(40척)의 선박 건조계약 취소 등이 예상돼 대우조선은 물론이고 채권단 등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 채권은행은 계약 취소에 따라 선주들에게 발급해 준 선수금환급보증(RG)을 대거 물어줘야 한다. 특히 7조 원어치 RG를 보유한 수은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채권자들은 보유한 채권의 93∼95%를 출자전환하는 강도 높은 채무조정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총 1조3500억 원의 회사채 중 국민연금(3800억 원), 우정사업본부(1800억 원) 등 70%를 기관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4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44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중 1500억 원을 쥐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정부 압박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안건을 찬성했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쉽사리 출자전환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유현 yhkang@donga.com·박창규·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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