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캐고 가공-식당일까지 6차산업… 인스턴트 나물도 연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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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산 산야초밥상’ 한봉기 대표

“단골손님들은 저희 집이 외부에 안 알려졌으면 한다고들 하세요. 밥상보다 저희 사는 모습이 궁금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강원 횡성군 ‘오음산 산야초밥상’ 한봉기 대표(사진)의 언어는 산나물을 닮았다. 식당들이 저마다 ‘차별화’를 홍보하지만 한 대표는 다른 식당과 달라서 되레 미안하다고 한다.

―테이블을 6개밖에 안 두는 이유가 있나.

“식재료가 하루 지나면 맛을 잃는다. 점심 영업이 끝나면 밭에 가서 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산과 들에서 채취한 재료로 6개 테이블용 음식만 장만한다.”

―손님들 불평이 있을 것 같다. 오지까지 찾아가서 허탕 치면 어떡하나.

“그래서 불편하고 죄송한 식당이다. 실은 당일에 전화하면 예약이 거의 안 된다. 산으로 밭으로 다니다 보니 유선전화도 잘 못 받는다. 최소한 전날이라도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남겨 주시면 좋다. 농약 한 방울 묻어있지 않은 정갈한 식재료로 보답하겠다. 식사가 끝나면 텃밭에 나가서 방금 드신 나물이 뭔지,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채취하는지를 소개해준다. 손님들이 그런 것을 더 좋아하더라.”

산야초밥상은 하루에 버스가 두 번만 다니는 오지에 있다. 횡성 사람들도 식당 소재지인 어둔리가 어딘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산에서 채취한 나물과 밭에서 기른 나물의 비중은.

“계절별로 조금 차이가 있다. 봄에는 야생 식재료가 80∼90%다. 할매들(황 대표는 마을 조합원들을 이렇게 표현한다)과 귀농인들이 직접 채취한다. 여름에는 밭에서 자란 나물 비중이 늘어난다.”

오음산 산야초밥상은 조만간 현지 나물을 별도의 상품으로도 출시한다. 물에 불리지 않고 뜨거운 물에 잠깐 넣었다 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천연 인스턴트 나물’이다.

―식당을 열게 된 배경은.

“서울에서 건축 설계 일을 10여 년 했다. 원주에 일이 많아 자주 내려왔다가 농촌을 알게 됐고, 2008년 남편과 횡성으로 귀농해 ‘꿈꾸는 풍뎅이’라는 농촌체험학교를 만들었다. 식당은 2014년 열었다. 지금은 작물 생산과 가공,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6차산업을 하고 있다.”

―도시인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인데….

“하루에 한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농사일) 요령도 없지만 유기농으로 하다 보니 풀을 손으로 일일이 매야 한다. 2, 3일 놔두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인생을 내 뜻대로 살자고 해서 시작한 일인 만큼 시골에서 사람 만나는 재미도 느끼고, 농촌의 가치도 알아가는 중이다.”

한 대표는 식당을 ‘불편하고 죄송한 식당’이라고 했지만 두 가지 수식어가 더 붙어야 할 것 같다. ‘불편하고 죄송하지만 정직하고 철학이 있는 식당’ 말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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