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기우제… 도시는 물축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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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농경지 3000ha 타들어 가고 1만4000명은 제한급수 받아
7월 8일 신촌물총축제 앞두고 “물 한방울 아까운데…” 따가운 시선
주최측 “지역 상권 살리는 행사… 올해는 수익금 농촌 후원 검토”

회사원 박나영 씨(27·여)는 다음 달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리는 ‘신촌물총축제’를 기다린다. 지난해 친구들과 물총을 쏘며 놀았던 즐거운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고향인 충북 충주시를 생각하면 마음에 걸린다. 충청 지역에서는 4개월째 가뭄으로 마실 물도 부족한 마을이 속출하고 있다. 박 씨는 “장마가 빨리 오기를 이렇게 바란 적이 없었다”며 “빨리 해갈이 돼서 마음 편하게 물총놀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린 ‘제4회 신촌물총축제’에서 시민들이 물총놀이를 즐기는 동안 소방차에서 뿜어낸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7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린 ‘제4회 신촌물총축제’에서 시민들이 물총놀이를 즐기는 동안 소방차에서 뿜어낸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신촌물총축제가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그러나 극심한 가뭄으로 논밭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가뭄을 체감하기 어려운 도심에서라고 해도 물을 그야말로 비 오듯 퍼붓는 물총놀이를 하는 게 적절한지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2일 기준 전국 3017ha의 농경지가 목이 마르다. 서울 여의도(290ha)의 10배 이상 넓이다. 주민 1만4794명은 상수도가 말라 급수차로 물을 받거나 제한 급수를 받고 있다. 올해 강우량 188.8mm는 평년의 절반 수준이다.

물총축제에 따가운 시선이 느는 이유다. 서울 서대문구와 자매결연 지역인 충북 영동군과 충남 아산시 관계자들은 “농촌에서는 당장 물 한 방울이 절실하다”며 “물이 넉넉한 대도시라고 해도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 물을 쓰는 것 같아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시민 권상혁 씨(29)는 “경찰의 시위진압용 살수차까지 가뭄 피해 현장에 투입되는 마당에 보기가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물 부족 국가의 현실에 맞나”라는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물총축제가 신촌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등 순기능을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촌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상권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홍익대 앞과 이태원 일대가 젊은층을 흡수하면서 명성은 퇴색했고 상권은 침체됐다. 이런 신촌에 놀거리를 만들어 사람을 끌어모으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게 물총축제다. 물총축제는 2014년 연세로의 ‘주말 차 없는 거리’ 지정과 함께 신촌 상권을 살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물총축제에서 거리 공연을 할 수 있는 청년 예술가에게는 관객을 만날 흔치 않는 기회다. 축제를 1회부터 기획한 축제기획업체 ‘무언가’ 측은 축제의 공익성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행사수익금 5300만 원을 서대문구 소외계층 가정에 지원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시는 물총축제에 지난해 2억5000만 원을 지원했고, 올해는 2억2000만 원을 배정했다. 논 25ha에 물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관정(管井)을 뚫을 수 있는 돈이다. 물총축제에서 쓰이는 물은 약 5만 L. 178명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이다.

‘무언가’의 한길우 감독은 “가뭄으로 좋지 않은 여론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서대문구와 수시로 논의하고 있다”며 “행사 수익을 가뭄 피해가 심한 농촌에 드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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