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개헌안에서 사라진 검찰의 영장청구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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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도입된 檢 영장청구권, “선진국 헌법엔 없다”며 삭제
警 영장청구권 공약 대선후보… 울산시장 관련 경찰 수사에 분노 “소수 검찰-경찰 떼거지 끔찍하다”
형사사법제도 변경은 정략 넘어 인권 보장의 헌법 가치 구현해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우리 헌법은 국회, 대통령,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의 조직과 직무 범위는 명확히 규정하지만 검찰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려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강제 수사에 대한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인정할 뿐이다. 헌법만 보면 검찰은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보좌하는 행정 각부의 많은 외청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검찰의 역할과 존재감은 그 어떤 헌법기관보다 크게 다가온다.

최근 청와대가 국회에 제출할 대통령의 개헌안을 공개했다. 이 개헌안에는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이 삭제됐다. 조국 민정수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그리스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헌법에 영장 청구 주체 규정을 둔 나라가 없다”며 다수 입법례를 따랐다고 했다.

현행 헌법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며 영장주의 원칙을 두고 있다. 원래 1948년의 제헌헌법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그러다가 1962년 제5차 개헌 시 “체포·구금·수색·압수에는 ‘검찰관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라고 10글자가 추가됐다. 아직 일제강점기 경찰의 악습과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5·16 직후의 비정상적 개헌을 합리화하고자 인권 보장 강화 명분으로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그 후 수십 년간 검찰과 경찰은 영장청구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검찰은 준사법적 인권 옹호 기관인 검사가 사법경찰의 인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로 영장청구권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검찰 조사 중 자살한 피의자가 2004∼2014년 83명에 이르고, 검찰 청구 영장의 기각률이 경찰 신청 영장보다 높은 상황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한 현행 제도는 검찰권의 남용을 불러온 만큼 이제는 오히려 검찰 통제가 시대적 과제라고 주장한다.

조국 수석이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영장 신청 주체가 헌법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지 검사의 영장 청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개헌 이후 국회가 입법으로 결정할 몫”이라며 한발 뺀 것도 검경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가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하면 헌법 개정 절차가 본격 진행된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나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을 얻으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확정된다.

대통령의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려면 현재의 의석 분포상 야당과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간에는 야당도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있어 경찰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경찰에 영장청구권을 주겠다고 공약했고, 안철수 후보도 수사는 원칙적으로 경찰이 담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의 입장이 대선 때와 같다면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헌법에서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근 미묘한 변화의 기류도 있다. 홍준표 대표는 경찰의 울산시장 관련 수사와 관련해서 기존 당론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우리 당 후보들에 대한 야당 탄압식 내사 및 수사와 최근 울산지방경찰청장의 (자유당) 이기붕 말기 행태를 보니 경찰에 그런 권한을 주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고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수 검찰의 사냥개 노릇도 참고 견디기 힘든데 수많은 경찰이 떼거지로 달려든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다”고 말했다. 표현이 거칠지만, 요컨대 경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시비를 건 것이다. 야당들이 반대한다면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 표결을 통과할 가능성은 낮다.

형사 사법 제도의 변경은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략적 고려나 기관 이기주의는 절대 금물이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정치권과 언론,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치열한 토론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70년 동안 이루어진 민주주의 발전과 경찰 수준 향상의 성과를 반영하면서 아울러 인권 보장이라는 소중한 헌법적 가치를 최대한 구현할 수 있는 결론을 기다린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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