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활용한 첨단 기술이 최고의 ‘정책 도우미’로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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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 시스템을 바꾸자]<하> 4차 산업혁명과 전자정부

시각장애인 돕는 음성서비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쓰이는 ‘가상 바르샤바’ 서비스를 설명하는 사진. 시각장애인의 스마트폰으로 버스가 도착했다는 음성정보가 전달되고 있다. 사진 출처 바르샤바 시 홈페이지
시각장애인 돕는 음성서비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쓰이는 ‘가상 바르샤바’ 서비스를 설명하는 사진. 시각장애인의 스마트폰으로 버스가 도착했다는 음성정보가 전달되고 있다. 사진 출처 바르샤바 시 홈페이지
2004년 지진해일(쓰나미)로 수마트라 섬 연안에서 수십만 명이 숨진 인도네시아. 그 수도인 자카르타는 여전히 몬순(장마) 때마다 홍수를 겪는다. 그때마다 주민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도로 침수 상황 등을 공유한다. 효율적인 홍수 피해 경보시스템 개발에 골몰하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점에 착안했다. 인도네시아 국립재난관리청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함께 시민과 구조대원에게 위험을 자동으로 경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민들이 SNS에 올리는 정보와 상하수도, 운송, 에너지 같은 정부의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취합한 ‘홍수지도(Petabencana)’다. 2014년 12월 가동을 시작한 홍수지도 덕에 인명피해를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첨단기술, 최고의 정책 도우미

“4차 산업혁명은 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고용, 심지어 정부 형태까지도 바꿀 것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하며 이같이 예상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같이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로 꼽히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정책 결정에 활용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재난 대응을 위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솔루션 도입은 흔해졌다. 지진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는 자국 최대 이동통신사 NTT도코모와 함께 빅데이터 기반 대피 계획을 수립했다. 휴대전화 사용자의 위치와 연령을 비롯한 각종 정보를 담은 NTT도코모의 기지국 데이터를 분석한 것. 강진이 발생하면 도쿄 도(都) 내 최대 425만 명이 귀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결과를 뽑아냈다. 사막이 많은 아랍에미리트에선 위성데이터와 시민들이 올리는 지역별 공기 질 데이터를 융합해 모래폭풍을 사전에 경고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진 공적 임무를 AI가 수행하기도 한다. 교육훈련이 대표적이다. 미국 백악관이 최근 발표한 ‘AI 자동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미 해군 정보 병과 신병 훈련에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발한 AI 프로그램 ‘디지털 튜터’를 활용한 실험을 소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AI에게 훈련받은 신병들이 10년 경력 전문가와 맞먹는 문제 해결 능력을 보였다. 첨단 인력 양성에 AI가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IoT 기술을 활용한 ‘가상(virtual) 바르샤바’는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돕는다. 폴란드 바르샤바 시내 곳곳에 설치된 비콘(근거리 무선통신 장치) 센서 수십만 개가 주요 시설물과 장애물의 위치를 시각장애인의 스마트폰에 음성정보로 전달한다.

미 시카고 시는 식당 위생단속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과거 위반 건수, 쓰레기와 위생 관련 민원, 평균 기온, 주변 강도 사건 수, 담배와 주류 판매 허가 등을 주요 변수로 분석해 동일한 인력으로도 적발률을 25%나 올렸다.

○ “정부는 거들 뿐”

국내에서도 AI 등을 활용한 정책 도구들이 쏟아진다. 법무부와 대구시, 서울 강남구가 도입한 민원 상담 AI ‘챗봇’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세계 일류급 전자정부를 구축해 놓고도 활용은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데이터는 기관마다 형식이나 내용이 달라 활용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는 “오랜 전자정부 운영으로 많은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부처별 칸막이 탓에 데이터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통로가 막혀 있고, 일관성도 부족하다”며 “정부는 통합적 데이터 관리 체계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과 이를 위한 정책 역시 경쟁력을 더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 이용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5.6점으로 전체 평균(5.9점)보다 낮았다. ‘ICT 강국’으로 자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김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정부 주도로 예산을 대거 들여 단기간에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정책 관행을 멈춰야 할 때”라며 “4차 산업혁명 분야 연구에 장애물이 없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4차 산업혁명#행정부#ict#정책#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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