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납품업체와 판촉행사때 인건비 분담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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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유통 불공정 근절 대책]납품업체 권익보호 강화
재고 떠넘기기 ‘판매분 매입’ 금지… 판매수수료 공개, 대형마트로 확대
과징금 부과 기준 2배 인상
신고포상금 지급상한 1억→ 5억… 분쟁조정기구, 시도별 운영 추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가 13일 내놓은 ‘유통 분야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은 관행으로 이어져 온 대형 유통업체의 ‘갑(甲)질’을 막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재고 부담을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판매분 매입’이 법으로 금지되고,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이 법을 어기면 최대 140%까지 가중된 과징금이 매겨진다. 공정위는 “앞으로 납품업체 시각에서 문제점을 찾되 대책을 검토할 때는 유통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균형 있게 고려하겠다”며 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단기간에 여러 규제가 쏟아지면서 가뜩이나 움츠러든 유통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 ‘갑질 관행’에 급제동

이날 발표된 대책에 앞으로 금지될 것으로 예고된 판매분 매입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납품업체에 재고 부담을 떠넘기거나 부당반품 금지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해 온 대표적인 거래 방식이다.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서 상품을 받을 때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나중에 소비자에게 판매한 만큼의 대금만 업체에 지불하는 것이다. 납품된 물건이 소비자에게 100% 판매되지 않으면 제조업체가 재고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 4월 열린 공정위 간담회에서도 “유통업체의 재고 비용까지 떠안게 돼 사업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는 제조업체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앞으로 납품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판매나 판촉 행사를 벌일 때도 이득을 얻은 만큼의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 해당 행사로 유통업체와 납품업체가 얻은 이익이 명확하지 않으면 50 대 50 비율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그동안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인건비를 제조업체에 떠넘겨 역시 대표적인 갑질로 꼽혔다. 한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있는 A업체 관계자는 “마트에서 판촉 사원을 보내라고 하면 우리 입장에선 거절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매번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이후 공정위에 신고된 전체 불공정거래 행위 중 11.9%가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 사용’이었다.

이 밖에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상품을 주문할 때는 계약서에 수량을 반드시 기재하도록 했다. 상품 수량을 계약서에 적지 않고 구두로만 주문해 과잉 주문, 부당 반품 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법 위반 여부 판단 기준, 반품 허용 사례 등을 명시한 ‘부당반품 심사지침’도 만든다.

이용기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침체되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성장을 못하기 때문이다”라며 “이번 대책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 과징금 2배로 높아진다

대금을 늦게 지급하거나 이미 납품한 물건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반품하는 경우에 부과되는 과징금도 대폭 인상된다. 공정위는 현재 법 위반 행위의 중대성을 감안해 위법 행위와 직접 관련된 금액(위반금액)에 30∼70%를 곱해 과징금을 산출하고 있다. 이를 2배인 60∼140%로 인상할 예정이다. 유통업체의 매출액을 계산하기 어려울 때 적용하는 ‘정액 과징금’도 현재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2배로 높아진다. 여기에 3배 손해배상제 등이 도입되면 대형마트의 위반금액이 1억2800만 원이라고 가정할 때 내야 할 과징금과 손해배상액은 1억9200만 원에서 5억1200만 원으로 약 2.7배로 늘어난다.

유통업체의 갑질을 신고했을 때 주는 신고 포상금도 1억 원에서 5억 원으로 인상된다. 현행 포상금이 내부 고발이나 신고를 유도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2년 신고 포상금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포상금 신청 및 지급 사례는 2건에 불과했다.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시도별로 공정거래조정원과 동일한 법적 권한을 가진 ‘분쟁조정기구’를 설치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공정거래조정원이 서울에만 있어 지방에 있는 납품업체들이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점을 보완한 조치다. 공정위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실태를 점검하고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겨주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판매 수수료 공개 대상 업체도 늘어난다. 현재는 백화점과 TV홈쇼핑만 판매 수수료를 공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도 대상에 포함된다. 또 내년부턴 ‘대규모 유통업거래 공시제도’도 도입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판촉 비용이나 매장 인테리어 비용, 판매 장려금 등 납품업체와의 주요 거래 조건과 현황을 공정위 홈페이지 등에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는 조치다. 현재는 판매 수수료 이외의 다른 조건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단기간에 규제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시장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유통시장이 굉장히 침체돼 있다”며 “3배 손해배상 등과 같은 조치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연착륙시킬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박희창 ramblas@donga.com·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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