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국회 상임위 열리면 전직원 대기’ 관행 없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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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과로사’ 계기로 근무환경 개선

언제 질문이나 호출이 떨어질지 몰라 국정감사 기간에 쌓여 있는 각종 보고 자료 옆에서 하염없이 대기하고 있는 공무원들. 
보건복지부는 ‘사무관 과로사’ 직후 이 같은 ‘무한정 국회 대기’를 없애는 등 효율적 근무 시스템을 마련했다. 동아일보DB
언제 질문이나 호출이 떨어질지 몰라 국정감사 기간에 쌓여 있는 각종 보고 자료 옆에서 하염없이 대기하고 있는 공무원들. 보건복지부는 ‘사무관 과로사’ 직후 이 같은 ‘무한정 국회 대기’를 없애는 등 효율적 근무 시스템을 마련했다. 동아일보DB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원회가 열린 지난달 14일, 복지부 소속 김모 사무관은 오후 8시경 퇴근했다. 퇴근한 뒤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김 사무관은 “국회가 열리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국회의원 질의를 기다리며 청사 사무실에서 자정을 넘기기가 다반사였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퇴근 후 내 시간을 갖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국회가 열리면 모든 직원이 대기하도록 하던 관행을 없애기로 내부 방침을 정해 지난달 초부터 시행 중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정경실 복지부 인사과장은 “전 직원이 무작정 사무실에서 대기하지 말고 국회의원 질의나 자료 요청을 있을 때 대응만 철저히 해달라고 공지했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국회 대정부 질문,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전날부터 모든 정부 부처 관련 공무원은 어김없이 야근을 해야 했다. 국회 일정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은 각 부처에 궁금한 내용이나 필요한 자료를 미리 요청한다. 하지만 ‘부처 길들이기’ 차원에서 질의서나 자료 요청을 밤늦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대다수 직원이 밤늦게까지 대기해야 했다. 특히 의원 질의서 초안을 작성하는 사무관의 업무 부담이 컸다. 복지부 소속 한 사무관은 “자정에 질의서나 자료 요청을 하면 다행이다. 새벽에 자료를 요청한 뒤 아침까지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아 밤을 새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국회 대기 관행을 없애기로 한 것은 올 1월 복지부 소속 김모 사무관(35·여)이 일요일에 출근했다 심장 질환으로 청사 계단에서 쓰러져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됐다. 김 사무관은 세 자녀를 둔 ‘워킹맘’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후 복지부는 국회 대기 관행 폐지 외에도 토요일 출근 전면 금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는 자녀를 둔 직원의 출근 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 사용 확대 등 재발 방치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복지부는 국회 대기 관행을 없애는 대신 의원 질의나 자료 요청이 있으면 국회담당팀이 해당 직원에게 연락해 집에서도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정 과장은 “시행 전에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2월 국회 때 해보니 아무 문제없었다. 앞으로 이런 문화가 정착되도록 꾸준히 추진해 나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복지부의 ‘실험’은 공직 사회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선 주자들도 경쟁적으로 일·가정 양립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9일 △퇴근 후 최소 9시간 휴식 보장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탄력근무제 도입 △퇴근 후 업무 지시 자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근무혁신 지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일·가정 양립이 정착하려면 국회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의 감시와 견제를 받는 정부 부처 입장에서 국회 일정이나 국회의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지부 소속 한 과장은 “선진국 국회의원은 자료 요청을 최소 며칠 전에 하기 때문에 공무원이 굳이 야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제출할 수 있다”며 “국회가 변해야 공직 사회도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워킹맘#과로사#복지부#국회 상임위#전직원 대기#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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