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티 나지만 핫한, 청춘의 안식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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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숨은 보석 ‘복합 문화 공간’
브라운관 TV에 오래된 가죽소파, 카페이자 작업장이며 공연장
주택가-공구거리 새 명소로 떠

2016년 7월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 ‘아이다호’. 키아누 리브스, 리버 피닉스 주연의 영화 ‘아이다호’의 마지막 대사를 담은 네온사인이 켜져 있다. 아이다호 제공
2016년 7월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 ‘아이다호’. 키아누 리브스, 리버 피닉스 주연의 영화 ‘아이다호’의 마지막 대사를 담은 네온사인이 켜져 있다. 아이다호 제공
16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한 주택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골목에 자리한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1층엔 새빨간 미용실 간판이 붙어 있다.

그 옆에 있는 자그마한 간판 ‘Idaho(아이다호)’는 겉만 봐선 무슨 공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간신히 입구를 찾아 올라가면 회색 노이즈 화면밖에 보이지 않는 브라운관 TV만 있다. 이곳은 복합 문화 공간 ‘아이다호’다.

○ “카페가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이에요”

최근 망원동을 비롯해 경리단길, 을지로 등지에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음식점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20, 30대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공간에서 자신의 작업을 전시·판매하고 공연을 연다. 대부분 ‘아이다호’처럼 커다란 간판이나 표지판도 없고, 먹거리를 팔지만 식당으로 불리기는 꺼린다. ‘아이다호’는 스스로를 ‘카페·펍을 기반으로 한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찾기 힘든 위치에 자리한 탓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눈 밝은 사람만 찾아오는 묘한 멤버십도 형성돼 있다.

‘아이다호’는 2016년 서울 홍익대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렉트로닉 밴드 ‘히든플라스틱’ 멤버 크랜(강경훈)과 비주얼 아티스트 판타스틱 린린(오세애)이 시작했다. 처음에는 둘만의 작업실을 구하던 두 사람은 다른 예술가도 편하게 찾아와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방향을 바꿨다. 강 씨는 “콘셉트를 정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취향대로 공간을 만들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전시와 공연 역시 두 사람의 취향에 따른다. 대관 요청이 들어와도 공간의 성격과 맞는지 고려해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20년 넘게 동네 헬스클럽으로 운영됐던 이곳은 지금도 벽면에 ‘기본 스트레칭 동작’ 삽화가 담긴 액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천장의 선풍기도 당시 것이다. 여기에 카운터 위에 달려 있는 오래된 표어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하얀색 타일과 물감을 던져 오래된 느낌을 만든 가죽 소파까지. 오래된 물건들을 활용해 복고적 분위기가 나지만 두 사람의 취향이 더해져 미지의 과거로 돌아간 분위기를 연출한다.

강 씨는 “상호명은 1991년 영화 ‘아이다호’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져 나중에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를 찍고 1993년 세상을 떠난 배우 리버 피닉스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분위기를 즐겼을지도.

○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숨은 공간

서울 중구 을지로의 와인바 ‘십분의 일’의 입구. 간판도 없이 메뉴만 써 놓았는데도 입소문으로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인스타그램
서울 중구 을지로의 와인바 ‘십분의 일’의 입구. 간판도 없이 메뉴만 써 놓았는데도 입소문으로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인스타그램
중구 을지로에도 이런 숨은 공간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때 밤이면 축축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을지로 골목은 새로운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지자체가 도시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청년들에게 싸게 작업실을 임대하면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든 게 계기가 됐다.

금속공예 아티스트가 작업실 겸 펍으로 운영하는 을지로3가의 ‘물결’은 간판 없이 포스터만 덩그러니 붙어 있다. ‘을지 커피숍’이란 오래된 간판이 있는 건물의 4층에 위치한 ‘물결’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중에 들어간 듯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십분의 일’은 취업공부를 함께 하던 친구들이 ‘청년 아로파’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와인바. 아예 간판도 없이 오래된 불투명 유리문에 ‘와인’ ‘소주 없음’이라는 문구만 적혀 있다.

간판도 공간도 숨겨놓듯 드러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들은 ‘처음부터 장사를 위해 차린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포틀랜드의 ‘에이스 호텔’처럼 예술가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거절한 한 업주는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형성되고 공간을 유지할 정도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idaho#아이다호#복합 문화 공간#을지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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