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전문기자의 사진 속 인생]나무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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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사진 장르 중 인물 사진에 관심이 많다. 이유는 인물 사진이 가장 도전할 거리가 많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사람을 찍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물 사진이란 ‘사진가와 피사체가 서로 좋아하는 사진’이다. 세상에 알려진 인물 사진 중에 몇 장이나 사진가와 피사체가 서로 좋다고 생각했을지 의문이다. 널리 알려진 윈스턴 처칠의 화난 듯한 인물 사진은 평론가들로부터 처칠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처칠은 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처칠에게서 파이프를 빼앗고 촬영한 탓에 사진에는 처칠의 불만이 가득 묻어났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해도 사진가와 피사체가 서로 ‘이 모습이 나를, 당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다’라는 사진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피사체가 좋아하는 사진, 사진가가 좋아하는 사진은 많을 수 있고 그 사진이 사진가와 피사체의 의중과 달리 잘 찍은 사진으로 알려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사진가와 피사체가 만족할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좋은 카메라만 있다면 서로가 만족할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마음’이라는 말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15년 전 겨울 필자는 필자보다 40세 많은 친구가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걸 지켜보며 그가 살았던 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의 잘생긴 금강송 아래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앞으로 나무를 찍어 봐라.” “저는 사람을 찍을 겁니다.” “사람은 항상 똑같지가 않아. 나무보다 못해….” “그래도 사람을 찍을 겁니다. 사람에게만 있는 맑음을 찍고 싶습니다.” 그 친구는 농부 철학자 고 전우익 선생이다. 선생은 그런 나를 더 이상 설득하지 않고 “열심히 찍어 봐라”고 격려해 줬다. 나는 사람 찍기가 힘들 때 이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저세상에 가 선생을 다시 만날 때 ‘열심히 찍었습니다. 사람도 찍을 만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겠노라고.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사진#나무처럼#금강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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