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돕는다면서 되레 발목잡는 ‘생계형 적합 업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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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시행 소상공인 특별법 논란


13일 시행을 앞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소상공인 특별법)’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이지만 정작 소상공인 업계는 “소상공인에게 혜택이 돌아오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산업만 죽일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상공인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관련 품목의 경쟁력이 떨어지며 국내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은 진입장벽이 낮아 영세해지는 소상공인 업종을 보호하기 위해 6월에 여야 합의로 마련된 법으로 지정되면 대기업들의 추가 투자가 제한된다. 환호해야 할 소상공인들이 오히려 “시장이 위축되고, 이에 따라 원재료를 생산하는 농가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치다. 경기 포천시에서 연매출 6억 원 규모의 김치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씨(60)는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법인데 정작 내 입장에선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치사업을 하는 대기업은 주로 소비자시장을 공략하는 반면 소규모 업체들은 기업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에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업이 규제를 받게 되면서 국내 김치산업만 위축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국내 김치산업이 위축되면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 김치업체들만 득을 볼 것”이라고 걱정했다.

비슷한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두부, 막걸리가 대표적이다.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두부는 매출 제한 조치가 내려진 2011∼2014년 포장 두부의 월평균 판매액이 감소했다. 그러자 2011년 2301t이던 콩 판매량도 2014년 2253t으로 하락했다.

막걸리도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가 2015년 제외됐다. 적합업종 지정 전 5000억 원대였던 국내 막걸리 시장은 현재 3000억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막걸리를 제조 및 판매하는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연구개발과 신제품 개발을 활발하게 했던 대기업이 (적합업종 지정으로) 손을 떼며 막걸리 업계는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내 소상공인을 위해 만든 규제가 의도와 달리 외국 기업만 배불리게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 법인이 없는 상태에서 수입이 이뤄진 상품은 규제를 피해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이 규제로 투자에 발목이 잡힌 가운데 해외 기업들이 시장을 점령한 선례는 발광다이오드(LED)산업이다. LED산업은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오스람과 필립스 등 외국업체 비중이 2011년 4.5%에서 2013년 10%대로 뛰었다.

이번 시행령은 △신청단체 기준 △심의위원회 구성·운영 △대기업 등의 사업 진출에 대한 예외 승인 규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부분이 신청단체의 기준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소상공인단체가 각 적합업종을 추천할 수 있으며 이 단체에 참가하는 소상공인의 비율은 30%만 넘으면 된다. 소상공인연합회 등은 이 비율이 줄곧 90%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원석 소상공인연합회 본부장은 “소상공인보다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사실상 많이 반영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실태 조사를 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행령의 방향으로는 결국 형편이 좋은 중소기업만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며 “업종 지정을 해서 규제를 하기보다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염희진·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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