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불공정했던 종교재판… 사법제도는 공정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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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어/애덤 벤포라도 지음·강혜정 옮김/480쪽·2만 원·세종서적

12세기 한 종교재판은 죄를 부력으로 따졌다. 죄인을 물에 빠뜨려 떠오르면 유죄, 가라앉으면 무죄라는 것이다. 이는 랭스 대주교 잉크마르의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음성이 울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없다”는 설명에 근거했다.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방식이다. 그런데 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던 시대에는 진실하고 공정한 재판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묻는다. 지금부터 900년 이후의 누군가는 우리의 사법제도를 어떻게 볼까?

저자는 후손들이 우리가 신성 재판을 대할 때 못지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도 직관이 몸에 배어 오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로젠바움의 죽음이 단적인 예다. 로젠바움은 강도에게 맞아 쓰러졌지만, 옷에 묻은 토사물 때문에 주취자로 오인받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그를 본 구급대원, 경찰, 의료진은 토사물로 인한 혐오감 때문에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처럼 의식 너머의 여러 인지적 요인이 사법제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강압적 심문 기법, 잘못된 기억을 가진 목격자,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넘기지 않는 검사, 사람인 이상 편견을 가진 배심원과 판사까지. 성역으로 여겨졌던 사법제도의 구멍을 흥미진진한 문체로 파헤친다. 이를 보완할 개혁안까지 2장에 걸쳐 조목조목 제시한 수작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언페어#애덤 벤포라도#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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