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노트르담 복구 참여 쇄도, 치열해진 세계의 문화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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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 있는 거장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 ‘인류 최고의 회화’로 불리는 이 그림들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 늘 일본이 떠오른다.

미켈란젤로가 걸작을 완성한 뒤 약 500년이 흘러 색이 바래고 손상되자 바티칸은 1981년 복원을 추진했다. 자금을 댄 주체는 일본 민영방송 NTV. 독점 촬영권이란 대가가 있었지만 NTV는 최첨단 기법을 동원해 그림 고유의 색을 되찾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에 일본의 미술품 복원 실력이 널리 알려졌다.

15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직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프랑스의 요청이 있으면 복원 작업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23일 파리를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대성당 재건에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국제사회의 연대를 위한 순수한 지원인 듯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바티칸 사례처럼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을 주도하며 일본의 문화재 복원 기술을 홍보하려는 전략을 담고 있었다. 파리의 한 고위 외교 관계자도 기자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 과정에 참여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물밑 싸움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일본뿐이랴. 20일 가디언에 따르면 이언 모리스 영국 문화재관리국장은 “영국은 윈저성, 요크 대성당 등 문화재 복구 경험이 풍부하다. 또 건축가, 고고학자, 석공, 목수, 스테인드글라스 전문가 등의 보존 및 구조 기술을 전할 준비도 돼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통화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 미국의 훌륭한 수리 및 건설 분야 전문가들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특히 이번 복구에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활용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브라질 국립박물관 화재 복구에 이미 각종 로봇 및 디지털 기술이 투입됐다. 참여한다면 단순한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각국의 차세대 첨단 산업 및 기술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국가는 중국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에 하이테크 로봇이 필요한데 이미 중국이 만든 드론이 성당을 구한 바 있다”며 은근히 숟가락을 올렸다. 화재 당시 HD 카메라를 장착한 중국산 드론이 상공에서 열을 감지해 소방관들로 하여금 호스로 물을 뿌릴 방향을 알려준 것을 생색낸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화재 직후 기자회견에서 “국경을 뛰어넘어 가장 훌륭한 능력을 가진 이에게 성당 복구를 맡길 것”이라고 했다. 국제 건축 공모 실시 계획도 밝혀 해외 각국이 복구 작업에 참여할 길을 열어뒀다.

한국도 빅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문화재 복원 기술에 상당한 실력을 갖췄다. 문재인 대통령도 화재 직후 마크롱 대통령에게 “함께 위로하며 복원해 낼 것”이라고 위로했다. 한국이 문화, 기술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알릴 좋은 기회다. 그런 만큼 복원 사업 및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노트르담 대성당#빅데이터#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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