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심전도 못재는 병원 응급구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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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구급대원 ‘규제족쇄’ 풀리지만
응급실-사설구급차 소속 4156명 혈당 측정 금지 등 업무제한 ‘그대로’
13일 국회서 응급의료체계 토론회… 당초 故윤한덕 센터장 토론자 예정
입구에 “머리 맞대시길” 그의 글

故 윤한덕 센터장 빈자리엔 낡은 간이침대만… 국립중앙의료원이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집무실 
사진을 13일 유족의 동의를 얻어 공개했다. 윤 센터장은 사진 속 간이침대에서 거의 매일 잠을 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센터장을 추모하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했다. 침대 옆 금색
 보자기로 싼 물품은 설에 가족에게 줄 선물이었다고 한다. 닥터헬기 모형은 국내 닥터헬기 도입을 주도한 윤 센터장이 대형 기종이 필요하다고 보고 모형을 구해 집무실에 둔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故 윤한덕 센터장 빈자리엔 낡은 간이침대만… 국립중앙의료원이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집무실 사진을 13일 유족의 동의를 얻어 공개했다. 윤 센터장은 사진 속 간이침대에서 거의 매일 잠을 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센터장을 추모하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했다. 침대 옆 금색 보자기로 싼 물품은 설에 가족에게 줄 선물이었다고 한다. 닥터헬기 모형은 국내 닥터헬기 도입을 주도한 윤 센터장이 대형 기종이 필요하다고 보고 모형을 구해 집무실에 둔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벌에 쏘여 과민성 쇼크로 119를 불러도 치료제를 맞으려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어야 한다.”

설을 하루 앞두고 과로로 숨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이 지난해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119구급대나 응급실에서 활동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가 혈압 측정 등 14가지로 제한된 탓에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윤 센터장은 8024자 분량의 페이스북 글에서 “센터장이 아닌, 언제든 응급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간청한다”며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넓혀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말 119구급대나 의료기관, 사설 구급차 업체에서 활동하는 국내 응급구조사는 2만1643명이다. 이 중 80.8%인 1만7487명이 119구급대원이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구급대원의 업무 범위를 넓혀 주기로 했다.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될 불안을 안고 환자를 살려야 하는 구급대원의 고충을 다룬 동아일보 보도(지난해 11월 19일자 A1면, 20일자 A1면 참조)에 따른 것이다.

반면 응급실이나 사설 구급차 업체 소속인 응급구조사 4156명에 대한 업무 규제는 그대로다. 응급실 일손이 아무리 부족해도 이들은 심전도를 직접 잴 수 없다. 전극을 환자의 가슴에 붙이는 일은 할 수 있지만 동작 버튼은 의사가 와서 직접 눌러야 한다. 저혈당 환자에게 포도당 주사를 놓을 순 있지만 혈당을 측정하는 건 위법이다.

13일 서울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응급의료체계 고도화에 따른 응급구조사의 역할 및 업무 범위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선 이런 현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당초 이날 토론회에는 윤한덕 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를 대신해 토론회에 나온 윤순영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은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길 때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도 동승한 응급구조사가 전문의약품 투약량을 늘릴 수 없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선화 한국생활안전연합 공동대표는 “병원 안이든 밖이든 환자의 생명을 중심에 두고 업무 범위 개정을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응급구조학과 학생 500여 명 중 일부는 “응급구조사는 진료보조사가 아닙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병원 내 일자리를 두고 응급구조사와 경쟁하는 다른 직역 단체들은 반대 의견을 냈다. 정은희 대한간호협회 병원응급간호사회장은 “훈련이 부족한 인력이 배치되면 응급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업무 범위 확대는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간호대를 나와야 하듯 1급 응급구조사 역시 3, 4년제 대학 응급구조학과를 나오거나 2급 응급구조사로 3년 이상 일해야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심전도 측정이 가능한 임상병리사를 대표해 참석한 안영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임상생리검사학회장은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측정은 구급차 등 병원 밖에서만 허용하고, 응급실엔 임상병리사가 상주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는 뚜렷한 결론 없이 끝났다. 토론회장 밖 복도에 마련된 윤 센터장의 사진 옆에는 그의 페이스북 글 일부가 적혀 있었다. “어쩌면 (다른 직역 단체) 여러분의 가족이 어느 순간 응급구조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환자를 돌보는 숭고한 직업을 가진 분들로서 가식 없는 논의의 장에서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실 거라고 믿습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응급의료체계#응급구조사 규제#윤한덕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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