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24>“오늘 어디가요?” “심심해”…엄마에겐 공포의 방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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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시간은 다른 가족들의 시간과 다르게 간다. 평일엔 숨통이 트이는 반면 주말은 전쟁터다. 쉬는 가족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 방학은 주부에게 연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다자녀 엄마에겐 더 말할 것도 없다.

‘공포의 겨울방학’이 돌아왔다. 한때 ‘낭만’이었던 연말은 아이들 방학이란 것이 생긴 뒤로 그저 ‘난관’이 됐다. 식사부터 목욕까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영·유아들은 온종일 엄마를 필요로 했다. 더구나 지난해까지 그런 아이들이 셋에 불과(?)했지만 이젠 넷이다.

큰 애들 셋만 있었을 때는 그래도 어디든 데리고 나가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공원, 쇼핑몰, 키즈카페 등등. 하지만 갓난아기가 생긴 올해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여름이라면 하다못해 실내복 차림 그대로 집 앞 놀이터라도 갈 텐데…. 한겨울이라 문 밖 몇 발짝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네 아이를 서너 겹씩 무장시켜야 함은 아기 짐만 해도 산더미였다. 게다가 자칫 독감이라도 걸리면 재앙이 따로 없었다. 네 아이에게 순식간에 전염돼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의 윤회’가 시작될 터다.

막내만이라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설상가상으로 이번 방학엔 친정 부모님마저 안 계셨다. 연말을 끼고 여행을 가셨기 때문이다. “아이들 방학을 생각 못하고 날짜를 잡았구나. 너 힘들어서 어떡하니….” 엄마는 출국하시는 당일까지도 죄인처럼 미안해하셨다. 솔직히 낭패감이 든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자식들 맡기자고 부모님의 여행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애들 일로 사나흘에 한 번 부모님께 SOS를 치고 있는 형편이었다.

‘뭘 하지?’ 전날까지 머리를 싸맸지만 결국 별다른 계획 없이 방학 첫날을 맞았다. 엄마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아침 눈 뜨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오늘 어디가요?” 하고 물었다. 제법 머리가 큰 첫째가 “엄마, ○○이는 미국 간대. 우리는 프랑스 가면 안돼?” 했다. 프랑스라…. 두 동생은 한술 더 떠 “홍콩 디즈니랜드 가고 싶어!” 하고 덧붙였다. 하아, 집 앞 놀이터도 못 가는 판에 프랑스, 홍콩이라니….

아이들에게 “아가 때문에 어디 나갈 수가 없어” 하고 사정을 설명한 뒤 거실 TV를 틀었다. 그렇게 첫날은 어린이채널을 돌려가며 하루를 때웠다. 평소 TV를 잘 보여주지 않는 엄마가 종일 만화채널을 틀어주자 아이들은 그저 ‘웬 떡이냐’며 신나게 시청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 저녁쯤 되자 아이들은 또 다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엄마, 심심해.” “놀 거 없어?”

다음날은 오래 전 사놓은 놀이용 점토에 생각이 닿았다. 색색의 점토를 꺼내주었더니 아이들은 각자 작품을 만들고 소꿉놀이도 하면서 제법 신나게 놀았다. 전날보다 훨씬 ‘능동적인’ 놀이풍경에 일단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너무 능동적으로 논 탓(!)에 아이들이 돌아다닌 거실, 서재, 침실 곳곳에 점토가루가 날아다녔다. 결국 반나절 점토놀이 끝에 남은 것은 대청소였다. 그날 저녁 내내 7kg이 넘는 아기를 업고 청소기와 테이프크리너를 돌려야 했다. 점토놀이 두 번만 했다가는 몸살이 날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엔 갓난아기를 들쳐 업고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쇼핑몰로 향했다. 아이들을 혼자 데리고 나간다는 게 엄두가 나진 않았지만, 전날 ‘점토놀이 참사’를 통해 집에 있는 것도 능사는 아니란 교훈을 얻었다. 잘 생각해보니 큰 애들을 미술놀이 카페 같은 데에 넣어놓으면 갓난아기 하나만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큰 애들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가 배가 고프다며 칭얼댔다. 겨우 수유실을 찾아 젖을 좀 물리자 어느덧 큰애들 데리러 갈 시각이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더니 이번엔 ‘익숙한 지옥’이 시작됐다. 번갈아 가며 “화장실 가고 싶다”거나 일일이 “음식 좀 씹어” 하지 않으면 도통 밥을 먹지 않는 큰 애들, 시종일관 버둥거리는 막내까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 역시 나오는 게 아니었어.’ 식당을 나올 때쯤엔 말 그대로 멘탈이 ‘바닥까지 탈탈’ 털린 느낌이었다. 더 고민할 겨를도 없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도 마냥 쉬고 즐기면 되는 방학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방학이란 막판에 몰아서 하는 탐구과제를 빼면 그저 놀고먹는 시간이었다. 특히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많이 다녔다. 친정 부모님께서 워낙 문화유산답사 같은 것을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두 분 모두 교직에 종사하셔서 방학기간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국 유적지와 박물관 탐방은 물론이고 한 번은 차를 빌려서 한 달 간 해외여행을 한 적도 있다.

그랬기에 나도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되면 막연히 아이들과 그런 방학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 회사원에겐 분기마다 돌아오는 일주일여의 짧은 휴가가 있을지언정 방학은 없었다. 일껏 잡은 휴가가 아이들 방학과 엇갈리기도 했다. 그러면 몇 주 전부터 아이들 맡길 곳을 찾느라 전전긍긍해야 했다. 사실 내가 육아휴직 중인 올 겨울 방학은 여러모로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허덕이다 보니 허위허위 열흘 정도의 방학의 끝이 다가왔다. 내일부터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하자 셋째가 “싫은데” 했다. 제대로 된 나들이 한 번 못 간 방학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싫지 않았나 보다. 하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엄마와 종일 붙어 있어볼까. 그저 힘들다고 ‘빨리 지나가라’고 기도했던 게 새삼 미안해졌다. 다가오는 여름 방학엔 가까운 교외라도 며칠 나들이 가야겠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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