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북투자 늘것” vs “美제재 안 풀면…” 회담을 보는 北中 접경지역 르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0일 1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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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의 대북투자 늘어날 것” vs “미국이 제재 안 풀면 다 소용없다”
북-중 접경지역 북한식당의 여종업원, 회담 결과에 큰 관심 보여
중국 당국, 북한 관련 사업 관련 “준비는 하되, 아직 시작하진 말라”라고 지시
‘북한 특수’ 기대하며 북한 토지 임대 수익 노린 ‘투기 세력’의 방북 최근 늘어

“(저희가) 워낙 관심이 있어서요….”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첫날인 18일 오후 북-중 접경지역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의 북한 음식점 류경식당. 동아일보·채널A 취재진이 이날 오전 관영 중국중앙(CC)TV로 생방송됐던 남북 정상 간 만남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자 한 북한 종업원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 종업원은 고개를 내밀어 한참 이 영상을 지켜봤다. 이 종업원을 쳐다보자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며 수줍게 웃었다. 다른 종업원도 이내 다가와 같이 남북 정상의 만남을 시청했다. ‘오전에 중국 생방송을 못 봤느냐’고 묻자 “그때는 못 봤다”고 말했다.

대북 사업을 크게 해온 이 지역의 한 조선족 기업가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중국의 대북 투자와 한국 기업의 (대북) 투자가 함께 늘어날 것”이라며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전환에 기대를 나타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를 감안해 중국 기업들이 북한과 무역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거나 북한 내 건설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고 북-중 접경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다. 즉 “제재 이후를 준비해 북한과 물밑 협의는 하되 지금 시작하지는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중 접경의 대북 사업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중 물류의 중심지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도 현재 제재를 의식해 개통하지 못하고 있는 신(新)압록강대교의 북한 측 도로 및 다리 상판 공사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지 중국인은 “중국 측이 북한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이 다리의 개통을 위한 북한 측 지역 공사를 진행하기로 북한에 약속했다”고 전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진전될 경우 신압록강대교와 인근의 북한 황금평 경제특구 개발도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도 엿보였다.

하지만 북한과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는 현지 소식통들에게서는 회의론도 감지됐다.

북한에 식료품 등을 수출하는 A 씨는 “현재 북-중 교역 상황이 (최악이었던) 올해 초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북-중 무역은 미국이 제재를 풀어야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물류업에 종사하는 B 씨도 “대북 제재로 단둥의 대북 물류가 다 죽었다”며 “미국이 제재를 안 풀면 남북 정상회담도 소용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곧 미국의 제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현지 소식통들은 올해 3차례 북-중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중 무역이 실질적으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밀수 등 제재 위반 행위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지만 세관을 통한 북-중 공식 무역은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중국이 안보리 제재에 동참하기 전인 지난해 상반기 하루 600대의 화물차량이 신의주와 단둥을 연결하는 압록강철교를 오갔으나 지금은 100대 수준”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제재 고삐를 조인 올해 초보다는 늘어났다는 시각도 있었다. 19일 취재진이 둘러본 단둥 해관(세관) 내부에는 북한 번호판을 단 대형 화물차량 1대밖에 없어 다소 썰렁했다. 이 차량에는 솜이 실려 있었다. 이날 오전 대형화물차량 5, 6대가 연달아 세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단둥을 통해 중국에 입국하는 북한인에 대한 출입국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전에는 단둥 세관을 통해 북한인이 입국할 때 한 사람당 수속 시간이 1분도 안 걸렸으나, 현재는 20분까지 길어졌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 신규 비자 발급 및 기존 비자 연장 금지를 규정한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되자 중국 당국이 불법 입국 단속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제재 금지 품목의 대북 수출에 대한 통관도 엄격히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매일 세관 통관 과정에서 규정 위반 적발 사건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단둥 지역에 한해 북한인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도강증(渡江證)’에 대한 심사도 엄격해졌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하지만 3차례의 북-중 정상회담 이후 단둥에 오는 북한인들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중국인은 “과거 북한인들이 북한 식당과 임가공 공장에서 주로 일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단둥의 호텔, 중국 식당 등 다양한 곳에 고용돼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둥 내 북한인이 2~3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오후 단둥(丹東) 둥강(東港)에 있는 식품기업의 북한 노동자 수십 명이 단둥 세관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 관계자는 “북한 노동자들이 잠시 북한에 다녀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 연장을 위해 잠시 귀국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둥 세관 내부에서 북한인들이 박스에 물건들을 가득 채워 출국 수속 절차를 밟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중국에서 옷 등 생필품 등을 대량 구매해 북한에서 팔기 위한 보따리상으로 보였다.

19일 압록강철교에는 차량이 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화물차량이 오갔다. 이날 오후 ‘묘향산 려행사(여행사)’라고 쓰인 녹색 관광버스가 여러 대가 중국인 관광객을 태우고 연이어 압록강 철교를 통해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돌아왔다. 현지 소식통은 “북한 토지를 임대해 투기로 돈을 벌어보려는 중국인들의 북한행이 최근 늘었다”고 말했다.

단둥·옌지=윤완준특파원 zeitung@donga.com
단둥·옌지=권오혁 특파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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