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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꼬리표 지겨워” 한국국적 숨기고 英서 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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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꼬리표 지겨워” 한국국적 숨기고 英서 난민의 삶

20021012|특별취재팀 입력 2009-10-26 03:00수정 2018-05-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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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468명 집단입국, 그 후 5년]<1> 끝나지 않은 유랑 맘 편히 살 곳 어디에
자녀 따돌림당하자 한국 떠
“北에서 막 왔다” 난민 신청
무상의료에 집값 90% 보조
알바뛰며 난생 첫 저축까지
최근엔 난민인정 어려워져
가진 돈 날리고 돌아오기도
탈북자 이명숙 씨(가명)가 8월 23일 일요일을 맞아 영국 런던 뉴몰든의 집을 나서 교회에 가고 있다. 2004년 7월 한국에 입국했던 이 씨는 지난해 4월 한국 국적을 숨긴 채 영국에 망명했다. 런던=유덕영 기자
탈북자 김복선 씨(33·여·이하 모두 가명)가 살고 있는 뉴몰든은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버스로 30∼40분 거리에 있는 한인 타운이다. 3만 명이 넘는 한국 교민이 거주하고 있어 거리에는 슈퍼마켓부터 교회, 식당, 한의원, 부동산 등 한글로 적힌 간판이 즐비했다. 런던에서 만난 탈북자 6명은 모두 뉴몰든에서 한국 교민들과 섞여 살고 있었다.

8월 22일 뉴몰든의 한 펍(pub)에서 기자와 만난 김 씨는 영국에서 태어난 세 살배기 딸을 안고 약속 장소에 나왔다. 김 씨는 “한국에서는 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초음파 검사 한번 하려 해도 돈이 없어서 어려웠는데, 여기서는 검사뿐만 아니라 모든 병원비가 다 무료”라며 영국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 씨는 탈북자라는 이유로 계속되는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같은 탈북자인 남편과 함께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의류공장, 식당,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을 해도 한국 직원들에 비해 항상 월급이 적었다. 김 씨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썼는데 결국 반항심만 커져갔다”며 “한국보다는 낫겠다 싶어 왔다”고 말했다.

탈북자 최민숙 양(16)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친구들에게 고향을 강원도라고 속였다. 하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북한 사투리가 발단이 돼 친구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을 한사코 말렸다. 어머니 이명숙 씨(41)는 “딸이 성적은 괜찮았지만 한국에서는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닐 것 같아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 속여야 난민으로 인정

영국 런던에서 만난 탈북자 6명은 영국이 한국에 비해 복지 수준이 높아 경제적으로는 한국보다 여유가 있다고 전했다. 실업수당, 자녀 양육 보조금, 무상 의료 혜택, 주택 임차료의 90% 등을 영국 정부가 제공한다.

서울에서 39.6m²(12평) 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이명숙 씨는 뉴몰든에서는 방 4개에 정원이 있는 2층 주택에서 살고 있다. 월 임차료가 1250파운드(약 250만 원)지만 그중 90%인 1125파운드를 영국 정부에서 보조해 주기 때문에 실제로 내는 돈은 125파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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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씨는 주택 임차료 외에 생활비 250파운드와 자녀 양육 보조금 250파운드 등 한 달에 500파운드를 영국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여기에 이 씨가 한인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1000파운드 정도를 벌어 두 식구가 쓸 수 있는 돈은 월 1500파운드(약 300만 원) 정도다.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냈던 저축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 국적이 있는 사실을 숨기고 북한에서 막 입국했다고 해야 한다. 이들이 입국할 때는 영국의 난민 심사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다. 이 씨는 지난해 4월 관광 목적으로 입국했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 없이 영국에 왔고, 이민국으로 가 난민 신청을 했다.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심사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한국을 거쳐 영국으로 간 탈북자뿐만 아니라 조선족 등이 대거 난민 신청을 하면서 최근에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가 힘들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영국 정부가 한국에 신원 조회를 요청하는 등 심사를 강화하면서 최근엔 난민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 찾아 떠났다가 되돌아오기도

이성진 씨(30)는 영국 이주 초기에는 맨체스터에 자리를 잡았다. 넉넉하진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동양인을 고용할 영국인은 없었다. 올해 초 뉴몰든으로 옮겼지만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런던에서 만난 탈북자 6명은 영국에 거주한 지 1년 반∼2년 정도 됐지만 1명만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었다. 이마저도 한인식당에서 하루 4시간 이하의 아르바이트가 전부여서 세금은 내지 않았고, 정부보조금을 받았다. 이 씨는 “영국에서 평생 살고 싶은 생각은 없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고향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승남 씨(51)도 한국에서 생활하기 어려워 2007년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갔다. 하지만 영국에선 더 살기가 어려웠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한국보다 더 어려웠다. 결국 도박판을 전전했다. 김 씨는 “브로커 비용에 항공료까지 영국 1년 갔다오면서 2000만 원을 날렸다”며 “영국에 갔다온 후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간 사람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임선태 씨는 2006년 미국에 갔다가 1년도 안 돼 돌아왔다. 임 씨는 멕시코를 통해 미국에 밀입국했지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임 씨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인디애나폴리스, 시카고, 뉴욕 등지의 공사판을 옮겨 다니며 일하다 돌아온 임 씨는 “고생은 고생대로 했고, 시간과 돈도 허비했다”고 말했다. 자유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남한으로, 외국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이들에게는 역시 영원한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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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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